Captain Cook을 묘사한 노래… 시드니 남부 초등학교서 ‘교내 알림음’으로 사용
시드니 남부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서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 1770년 호주 동부 해안을 탐험한 뒤 지금의 시드니 일대를 ‘New South Wales’라고 명명한 인물)을 ‘White Devil’(백인 악마)이라 지칭하는 노래가 연주되고 있다는 학부모의 불만이 제기되면서 NSW 교육부 장관이 개입하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첫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 보도에 따르면 래퍼이자 원주민 권리 활동가인 ‘Birdz’(본명 Nathan Bird)의 노래 ‘Bagi-la-m Bargan’(2021년 음반 발매)이 호주 ‘국가 화해주간’(National Reconciliation Week)을 전후해 이 학교의 종소리(교내 알림음)로 선택되었던 사실이, 교육부 대변인을 통해 확인됐다.
원주민 전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의 이 노래는 제임스 쿡 선장을 ‘면허 없는 살인자’로 묘사하고 ‘내 의지를 시험하고자 하는, 백인 악마를 죽이려는 욕망’을 언급하는 가사 내용이다.
한 학부모는 2GB 라디오에서 “아들로부터 ‘백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아들에게 ‘호주의 과거에 복잡한 이들이 있었음’을 설명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학부모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프루 카(Prue Car) NSW 교육부 장관은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노래의 가사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으며 교육부가 해당 내용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장관은 이어 “우리(NSW) 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어떤 종류의 분열도 만들고 싶지 않다”며 “가사를 읽어보니 학부모들이 왜 걱정하는지 이해하겠다”고 덧붙였다.
교육부 대변인은 ‘Bagi-la-m Bargan’이라는 음악이, 수업 시작이나 끝을 알리는 종소리로 사용된 것에 대해 해당 학교에 직접 항의한 학부모는 없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심적 부담을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해당 학교 측은 이에 대해 “화해주간을 기념하고자 이 음악을 채택한 것이며 분열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학교 지도부는 학교 종소리를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이 공립학교는 이 노래를 재생 목록에서 삭제했다.
NSW 크리스 민스(Chris Minns) 주 총리는 이번 일과 관련해 각 학교들이 노래 연주로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기보다는 전통적인 종소리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제안하면서 “일반적으로 랩 장르의 노래는 NSW 주 학교에서 가장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irz는 2021년 이 음악을 내놓으면서 한 미디어를 통해 “K’gari(지금의 Fraser Island)에 있는 인디안 헤드(Indian Head)에 서서 쿡 선장이 항해하는 것을 지켜본 부출라(Butchulla) 원주민 부족 전사의 관점에서 가사를 지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770년 5월 20일에 기록된 제임스 쿡 선장의 일기에는 그의 탐험선 ‘엔데버 호’(Endeavour)가 ‘많은 원주민이 모여 있는 절벽을 지나는’ 항해의 순간을 묘사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곳을 인디안 헤드(Indian Head)라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 있다.
Birdz의 노래 제목인 Bagi-la-m Bargan은 부출라 부족민 언어로 ‘부메랑으로 싸우다’(fighting boomerang)는 뜻이다.
이 노래를 부른 네이선 버드(Nathan Bird)는 노던 테러토리, 캐서린(Katherine, Northern Territory)에서 자랐으며, 스스로를 “Badtjala(Butchulla 부족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 Juru(Yuru로도 불리는 부족) 및 Scottish, Melanesian(토레스 해협 섬 지역의 부족)의 유산을 지닌 자랑스러운 Murri 부족 남자(지금의 NSW 북서부 내륙 및 퀸즐랜드 주 경계 일대를 기반으로 살았던 원주민 부족)”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강제로 가족과 분리된 뒤 여러 백인 기관을 전전했고(‘The Stolen Generation’)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어머니(버드의 할머니)와 재회할 수 있었던, 20세기 원주민들이 겪었던 공통된 아픔을 갖고 있다.
■ 국가 화해주간은…
National Reconciliation Week는 매년 5월 27일부터 6월 3일까지 호주 전역에서 기념되는 것으로, 원주민 커뮤니티와의 화해를 위한 두 가지의 중요한 이정표를 기린다. 그 하나는 ‘1967년 국민투표’로, 호주 헌법에서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에 대한 차별 내용을 삭제하는 것이 통과된 날이며, 또 하나는 고등법원이 호주 법률 시스템에 원주민 토지소유권 원칙을 인정한 ‘High Court Mabo decision’이다. 이는 토레스 해협 도서 지역 원주민 메리암(Meriam) 부족인 에디 마보(Edward Koiki Mabo)씨가 자기네 부족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 법원에 이를 인정할 것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소송으로, 고등법원까지 가는 오랜 시간 끝에 원주민들이 토지소유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