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없으면 시작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이 호주와의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양국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 당국 입장에서 이 격언은 지금 뼈아프게 와 닿을 듯하다. 중국의 갑작스런 대호주 선전포고는 지난해 모리슨(Scott Morrison) 정부가 COVID-19 기원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며 중국을 압박하면서 시작됐다. 중국은 호주에서 수입하는 보리에 대한 80%의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와인에 200%, 석탄에 50% 관세를 적용했다. 이외에도 호주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품목에 대해 까다로운 통관 절차로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자국민의 호주여행 및 유학을 사실상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구축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향해 단행했던 경제보복에서 재미를 본 중국 공산당은 이로써 호주 또한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일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주 입장은 강경했고, 농산품에서 호주는 상당한 손실을 입었지만 다른 부문에서 오히려 그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바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베이징의 공산당 지도부는 엄청나게 배가 아프겠지만 호주의 대외 무역은 상당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거의 마비됐던(전 세계 국가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제 상황을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의 빠른 경제 회복은 호주에 무역보복을 단행했던 중국의 공이 크다. 가장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호주의 주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수요가 급증하고 이로써 가격 또한 크게 오르면서 호주는 지난 4월에만 8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보았다. 전월인 3월 흑자는 58억 달러였다. 이 원자재를 필요로 하는 주요 국가가 바로 중국으로, 중국은 철광석의 60%를 호주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자국에서 필요한 석탄의 50%를 호주에 의존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서로의 적대감이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주는 일부 산업에서 손실을 입었지만 이 흑자수치만으로도 양국간의 전쟁 비용은 중국이 훨씬 크게 부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호주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비교적 적게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호주 공영 ABC 방송은 최근 호주와 중국간 무역전쟁 관련 분석에서 “장기적-전략적 관점에서 호주로 향했던 중국 공산당의 분노는 호주 입장에서 전화위복으로 끝날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사실 지난 십수 년 사이 호주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일 시장에 크게 의존해 왔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 중국의 경제보복은 호주로 하여금 다른 시장을 개척, 시장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이는 향후 대외수출 불안정성을 완화해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필리핀 외무장관 식의 작별인사? 중국은 호주와의 무역분쟁뿐 아니라 주변국들과 심각한 영토-영해분쟁을 겪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분쟁은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 5월 초, 필리핀 외무장관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중국을 향해 심한 욕설을 게시한 일이다. 그동안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수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동남아 국가들을 상대로 무력을 과시해 왔다. 게다가 중국 선박들 또한 주변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수시로 침범, 조업활동을 벌여 원성을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3일, 필리핀 외무부 테오도르 록신(Teodoro Locsin Jr.) 장관은 “내 친구 중국이여, 얼마나 더 정중하게 말할 수 있을까. 오, 그냥 꺼져버려. 우리 우정을 위해 뭘 하는 건가? 중국 너 말이야, 우리가 아니라. 우리는 노력하고 있는데, 너희는 잘 생긴 사내에게 억지로 관심을 쏟는 그냥 추악한 멍청이 같아”(China, my friend, how politely can I put it? Let me see … O … GET THE F*** OUT. What are you doing to our friendship? You. Not us. We're trying. You. You're like an ugly oaf, forcing your attentions on a handsome guy)라며 중국의 행위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중국의 영토야욕에 대한 필리핀 정부 관계자의 대응은 분명했다. 외무장관의 트윗이 있은 지 얼마 뒤, 자국 어선이 받는 위협에 대응하고자 필리핀은 EEZ 내에서 해안경비 훈련을 시작했다. 이에 중국이 해당 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자 필리핀 국방장관은 “우리가 우리 영해 내에서 무엇을 하든 중국은 간섭할 바가 아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오히려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먼저 한 발 물러나며 사태를 수습했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일어나는 긴장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베이징의 공산당 지도부는 대만을 무력화하려 끊임없이 시도하고 홍콩의 통제력을 장악했으며 인도와의 국경지대에서도 적대적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주변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일도 수시로 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16대의 중국 군용기가 말레이시아 영공을 진입하자 말레이시아 공군이 호크 전투기를 출격시켜 중국 공군기를 되돌려 놓은 바 있다. 그동안 중국에 의존하던 호주 산업계, 주요 비즈니스 리더들은 대중국 관계악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초조해하며 ‘관계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 측의 호주와의 관계는 중국 주변국에 대한 공산당 당국의 태도와 일치한다. 중국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타이완 등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맞서 노골적인 영해 야욕을 드러내고 있으며 주변 전역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호주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의 속셈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 잘 해내고 있다 대중국 견제에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무역전쟁의 경우 누구도 승자가 없는 어려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이를 인정했다는 것은 아니다.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그가 중국을 대상으로 한 관세는 중국에게 고통은 안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연구소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대중국 무역분쟁 동안 24만5천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또 워싱턴 기반의 정책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미화 1조7천억 달러, 0.3~0.7%의 GDP가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손실은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 전반이 악화되었고, 게다가 호주에 취한 극단적 조치로 중국은 전략적 탄약을 빼앗겼다. 호주산 석탄 금지조치를 취한 중국은 지난 1월과 2월, 중국의 주요 지역을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대부분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중국은 호주산 석탄을 거부함으로써 전기를 생산하지 못해 특히 상하이(Shanghai)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서는 수시로 정전사태가 일어났고 난방을 하지 못한 수많은 가정이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이 같은 석탄부족 사태에서도 중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자 에너지 수요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석탄 가격이 급등했다. 이달 첫 주에도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정전 사태가 계속됐고, 당국은 필요에 따라 전력을 배급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 가격은 톤당 미화 120달러로 최근 3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톤당 48달러에 비해 엄청나게 치솟은 가격이다. 호주가 상당한 무역흑자를 기록한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은 호주산 석탄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수입처를 찾고 있는 동안 호주산은 여전히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무역 부문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석탄뿐 아니라 철광석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5월 말,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철광석 가격은 톤당 200달러를 넘어섰다. 이 두 가지 원자재만으로도 호주는 중국과의 무역분쟁에서 다른 산업 부문이 잃어버린 손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물론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 새로운 도시 및 인프라 건설과 관련한 대규모 경기부양프로젝트를 통해 경제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통한 경기 붐을 통제하려 했다. 이는 수요 완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호주는 강력한 트럼프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건전성, 전통적 군사 야망은 안정적인 철 공급에 달려 있다. 중국 공산당 당국이 이를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3국 통한 수출 늘어 중국은 호주산 보리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실질적으로 수입을 막았지만 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호주의 보리 농민들은 중국시장 손실로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밀 농민들이 거의 80만 톤을 중국으로 보내 현금을 만들어냈다. 올해의 경우 호주산 보리의 태국 및 베트남 수출은 두 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수출 물량이 모두 태국이나 베트남으로만 가는 것이 아님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호주산 보리가 필요하고, 그렇기에 진취적 사업가들이 국가적 금지(사실상의)를 피해 우회하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호주산 바닷가재가 좋은 예이다. 중국이 호주로부터 직접 수입하는 랍스터를 제한하자 이전까지만 해도 호주산 랍스터 수입이 많지 않았던 홍콩이 갑작스럽게 수입 물량을 늘린 것이다. 중국 지배계급 고위층의 수요에 부응하고자 홍콩의 무역중개인들이 호주산 해산물을 수입, 중국으로 암거래(grey trade)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역제재로 인해 농산물 이상으로 타격이 심했던 와인 또한 분쟁의 혼란에서 벗어나고 있다. 멜번(Melbourne) 기반의 세계 최대 프리미엄 와인제조 및 수출업체 중 하나인 ‘Treasury Wine Estates’는 지난해 중국의 제재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으며, 2020년 내내 회사 주가가 하락했다. 하지만 최근 이 회사는 중국 외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유럽 및 미국에도 더 많은 와인을 공급했다. 이로써 주가가 회복되고 있으며 지난해 극히 저조한 실적에 비해 올해 들어 현재까지의 수익은 33%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5월에만 회사 주가는 17%가 상승했다. 호주 기업들은 지난 1973년,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외무역에 적응해 가고 있다. 이제 차이점은 글로벌 금융 붕괴,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경기침체, 심지어 무역분쟁과 같은 주요 충격을 흡수하는 유동 통화로 훨씬 더 민첩한 경제 기반을 마련해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호주에 대한 무역제재는 호주 길들이기에 실패했음은 물론 제 발등을 찍은(shot itself in the foot with)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남중국해를 놓고 주변국들과 영해 분쟁을 겪으며 무력을 과시하는 중국이 호주 길들이기에 나섰다가 제 발등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이 분쟁으로 인해 베이징(Beijing)이 받은 타격은 캔버라(Canberra)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 ABC 방송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