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34,000명 대상 폴란드 학자들 연구… 호주, ‘업무 우울증’ 유병률 높아
데보라 타이슨(Deborah Tyson)씨는 24세의 나이에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본인의 디자이너 회사를 운영한다는 설렘으로 건강에 해로운 업무 습관을 갖게 됐다.
올해 60세가 된 타이슨씨는 사업체의 성장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어느 때는 2~4시간만 자며 긴 시간을 일에 할애하곤 했다. 그녀는 “비즈니스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고, 내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면 항상 해야 할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시드니 기반의 개인적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 제공 업체 ‘블리스팟’(Blisspot) 최고경영자인 타이슨씨는 최근 몸에 이상이 생겨 3주 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그때 그녀는 자신이 해 온 ‘일’이 상당히 무모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그렇게 느꼈고, 그럼에도 나는 병실에 있어야 했다”는 타이슨씨는 “병원 입원은 내개 아주 큰 생각의 전환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없어도 사업체는 지속될 수 있고, 또한 아주 잘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일 중독(workaholic)에 대한 최근의 글로벌 연구 예비 결과를 보면, 타이슨씨의 오랜 경험은 호주 여성들에게 흔한 일이다.
폴란드 학자들 주도 하에 전 세계 3만4,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이 ‘보편적인’ 문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1,300명 넘는 호주인 참가자 가운데 약 24%는 ‘일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동료 연구원들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이 예비 결과는 호주인의 업무 우울증 유병률(prevalence of occupational depression)이 11%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음을 보여준다.
유럽 심리의학 저널 ‘European Association of Psychosomatic Medicine’에 따르면 업무 우울증을 안고 있는 이들은 일로 인한 기력 소진, 수면 부족, 피로감, 울적한 기분, 식욕 변화, (자신이) 쓸모 없다는 느낌 및 인지 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
“인지-정서적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연구의 호주 책임자인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University of South Australia) 레이첼 포터(Rachael Potter) 박사는 “업무 및 직장 문화가 일 중독의 주요 원인”이라며 “대개는 관리자들, 본인 업무를 힘들어하거나 가족 구성원 중 일 중독자가 있는 경우 워커홀릭이 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에 포함된 샘플을 봤을 때 우리는 일 중독이 가장 심한 문화권 국가 중 하나였다”며 “만약 동료들이, 혹은 여러분의 관리자가 야근을 강요한다면, 모두 일 중독을 불러오는 업무 문화 조장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 중독에 대해 포터 박사는 ‘장시간 일을 하거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욕구’로 정의하면서 “이들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죄책감, 무력감 혹은 공포를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런 증상이 수면 부족, 신체 및 정신 건강 저하, 직업 만족도 하락, 친구 및 가족들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포터 박사는 “누구나 인지적, 정서적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를 고갈시키기만 할 수는 없다”면서 “우리가 가진 직무요구(job demands, 직원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와 관련된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또는 조직적 요구 사항)를 처리하려면 이러한 자원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부터 호주에서는 직원이 업무 시간 이후 고용주의 연락이나 연락 시도에 대해 모니터링, 확인 및 응답을 거부할 수 있는 ‘right to disconnect laws’가 시행됐다. 이에 따라 직원은 근무 시간 외 회사측 연락에 응답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응답할 의무가 없다.
해당 규정은 ‘고용주가 근무 시간 외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것에 대해 직원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고용주에게 최대 1만 8,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다.
연구 결과, 전문가들의
‘일 중독’ 이해와 일치
이번 글로벌 직장인 대상 연구 결과에 대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의 직장 심리학(work psychology) 강사 다르자 크라흐트(Darja Kragt) 박사는 해당 연구의 호주인 표본 규모로 볼 때 이 결과는 호주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하면서 “다만 이번 예비 결과는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이 일 중독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또한 “(일 중독이) 직업 만족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바를 확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에서 일 중독이 만연한 것은 개인의 성취를 우선하는 개인주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크라흐트 박사는 “일 중독에서 호주인이 높은 순위에 있다면, 이는 호주 문화 자체가 영향을 주었거나 또는 그렇게(일 중독자로) 몰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진단하면서 “대체로 호주인들은 무언가 더 잘하고 싶어하는데, 이로 인해 더 오래 일하고, 일에 집착하며 그러다 어떤 이들은 결국 일 중독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공공정책 싱크탱크 ‘호주연구소’(The Australia Institute)의 ‘2023년 정시퇴근의 날(Go Home on Time Day)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근로자들이 연간 평균 281시간의 무급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이는 11,055달러의 소득 손실로 환산할 수 있다.
크라흐트 박사는 일 중독자들의 경우 대개는 스스로를 자신의 직업과 강하게 동일시하며, 그것으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체성 관점에서 일 중독을 보면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자신의 일과 매우 강하게 동일시하는 사람들이기에 (각자의) 일은 각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며 “(개개인의 일은) 자아 전체에 매우 중요하다보니 자기 일에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 중독을 극복하려면…
워커홀릭의 생활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또 다시 일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크라흐트 박사의 조언을 보면, 스스로의 일 중독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이를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다른 사람들의 여러분의 시간적 여유에 대해 언급한다면, 이는 (일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좋은 신호”라는 설명이다. 다음으로는 업무 시간 외에는 일과 관련된 이메일을 피하는 것 같이 업무와 관련해 설정해야 할 바운더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울러 일 중독자가 ‘부적응적 대처 메커니즘’(maladaptive coping mechanism)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제까지) 업무로 사용했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크라흐트 박사는 △취미 갖기, △수작업 활동, △스포츠 도전, △사회 활동 또는 자원봉사 참여 등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활동들은 ‘일’에 대한 집착을 대체할 수 있겠지만 그 행동기제의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신중하게 계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지원 인턴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