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소용돌이(와渦)를 꿰뚫는 예리한 도끼(부釜) 논평
(시드니=한국신문) 정동철 기자 = 밀정(密偵)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실 안보실 차장을 앞에 두고 ‘친일파 밀정’이냐고 대놓고 다그쳤다. 광복회장은 독립기념관장을 ‘밀정’에 빗대어 비판했다. 어느 일본계 한국 교수는 현재 상황을 “구한말 밀정과 친일단체 암약과 비슷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배우 이정재가 밀정 염석진 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영화 ‘암살’ 이후 밀정 전성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간첩, 스파이, 배신자 같은 현대 단어를 두고 하필 ‘밀정’이라는 오래 묵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말을 쓸까?
하는 짓으로 보면 간첩, 스파이, 배신자는 밀정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모두 우리 안에서 정체를 숨기고 적을 위해 일하는 비열한 악당이다. 하지만 밀정은 늘 그 대척점에 애국투사라는 존재가 있다. 영화 ‘암살’에서 밀정 염석진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안옥윤, 추상옥, 황덕삼 같은 투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방을 밀정으로 공격하는 사람은 의도와 상관 없이 이를 통해 스스로를 그와 싸우는 애국투사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애국투사는 절대선이라면 밀정은 절대악이다. 둘 사이에는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밀정 염석진이 죽어야 영화가 끝나듯이 오직 정의의 총탄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밀정’이 만들어내는 정치는 절대선과 절대악 간에 화해할 수 없는 무한 투쟁이다. 그것은 말이 흐르는 길을 막고 대신 총칼을 부르는, 더 이상 정치이기를 멈춘 괴이한 정치라 할 것이다.
‘밀정’을 영화 밖으로 불러내지 마라.
“이러다간 다 죽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