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소용돌이(와渦)를 꿰뚫는 예리한 도끼(부釜) 논평
(시드니=한국신문) 정동철 기자 = 호주중앙은행(RBA)의 미셀 불럭 총재는 조만간 기준금리 인하는 없다면서 모기지 대출 가정 중에서 일부는 집을 팔아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5일 호주 공영 ABC 방송에 따르면, 불럭 총재는 이날 시드니 아니카 재단에서 한 연설에서, 연 3.8%에 머물고 있는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5%까지 낮추기 위해 긴축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BA는 2022년 5월부터 연 7~8%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3번 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0.1%에서 4.35%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최근 호주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공공 부문 지출을 제외하면 거의 0%에 수렴하는 통계결과가 나오자 짐 차머스 재무장관 등이 고금리가 호주 경제를 해치고 있다고 압박을 가하던 참이었다. 노동당 원로인 웨인 스완 전 재무장관까지 나서서 RBA의 고금리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블럭 총재는 RBA는 물가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이러한 압력에 쐐기를 박았다.
호주 노동당 정부는 작년 9일 연임을 원하던 필립 로 전 RBA 총재를 불신임하고 불럭 총재를 신임 총재로 임명했다. 그럼에도 블럭 총재가 RBA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나서자 당혹스러운 기색이 뚜렷하다. 실제로 고금리로 인한 소비 위축이 경제침체의 원인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다. 문제는 2년 넘게 고금리 정책을 펴도 여전히 잡지 못하고 있는 물가다. RBA와 경제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를 정부의 확장적 재정지출로 보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무리를 해서라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둘 다 긴축모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RBA가 금리를 올려도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가 제대로 잡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 일정이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 노동당 정부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재정지출을 줄이면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렇다고 이 추세를 유지하면 RBA의 고금리 정책으로 정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총선 전망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경제가 좋을 때는 교육, 의료, 복지, 이민 등 다양한 이슈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경제가 나쁘면 이것이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고 선거의 대세를 결정한다. 호주가 경제침체로 실업률이 높아져도 RBA가 물가 때문에 고금리를 계속 이어간다면, 수입 감소와 대출상환금 부담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야 하는 모기지 가구가 늘어날 것이다. 민생이 총체적으로 붕괴하는 폭풍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호주든 한국이든 세계 어디든 민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선거에서 살아남을 정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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