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한국신문)정동철 기자 = 대한민국 대표 모노드라마 연극 ‘염쟁이 유씨’ 호주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 8월31일(토)과 9월 1일(일) 이틀 동안 시드니 뱅스타운 아츠센터에서 4회 공연이 이루어졌다. 1일 오후 3시 공연을 관람한 후 2일 오후 6시 시드니 이스트우드 스멜리 치즈 카페에서 염쟁이 유씨 역을 맡은 유순웅 배우를 만났다.
‘염쟁이 유씨’ 연극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모노드라마인데 1인 15역인가요?
- 20년 전 연극 대본을 처음 썼을 때 15 명 정도가 나왔는데 홍보용으로 그런 표현을 쓴 것 같아요. 오래 공연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인물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역할이 여럿 있어 실제로 그만큼은 아닙니다.
혼자서 극을 이끌어가면서 대사량이 엄청나더군요. 어떤 계기로 이렇게 어려운 연극에 주인공을 맡게 됐나요?
- 어떤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가 시골에 살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 염을 했습니다. 직업은 아니고요. 누가 죽으면 동네 어른이 염을 하는 전통이 있었어요. 후배 작가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걸로 연극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시작된 겁니다. 죽음이 무거운 주제라서 가벼운 에피소드 중심으로 넣고 빼고 하면서 1년 정도 준비했습니다.
연기뿐 아니라 대본과 연출에도 관여하신 건가요?
-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토론을 통해 이야기를 먼저 모았습니다. 그 후에 작가가 글을 쓰고 이를 함께 읽으면서 여러 번 수정 과정을 거쳐 완성됐습니다. 공연을 하면서도 계속 고치는 작업을 합니다.
좋은 연기를 하려면 배역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무대에서 1인다역 연기를 효과적으로 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 배역에 몰입하는 거는 연기 방법론 중 하나인데 이 연극에서는 하기 어렵죠. 보통 연극에서는 오랜 연습과 대화를 통해 상대 배우와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염쟁이 유씨’는 관객들과 소통하고 호흡을 함께 하는 게 핵심입니다. 혼자 하는 모노드라마지만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같이 놀아보자는 식으로 말이죠.
마당놀이나 탈춤처럼 말이죠?
- 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한번 어우러져 볼까, 호흡을 맞출까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장 기자부터 유산 다툼을 벌이는 자손들과 술 한 잔 기울이는 사람까지 관객이 참여할 역할이 많더군요. 주로 어떤 기준으로 관객을 뽑으시나요?
- 즉석 관상을 봅니다. 이 양반이 좀 적극적으로 반응할 것 같다 싶으면 선택합니다. 그게 늘 맞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혹시 뽑은 관객이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반응을 잘 하지 않으면 어떻게 수습하나요?
- 반응이 약하거나 소심한 적은 있는데 그렇다고 아예 거부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제대로 관찰을 못하고 기자 역할로 선택한 관객이 목발을 사용해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객석과 무대를 왔다 갔다 하려면 아무래도 힘드니까요. 결국 그 분이 옆에 있던 동료에게 기자 역할을 넘겨줘서 해결됐죠.
어제 연극을 보니까 퀴즈를 내서 맞춘 관객들에게 선물 봉투를 주던데 거기에 뭐가 들었나요?
- 공연장마다 다르죠.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보통 공연 티켓이나 초대장을 넣습니다. 시드니에서는 상품권이나 경품권을 넣었다고 하더군요.
염쟁이 유씨가 혼자서 아버지와 아들 역할을 휙휙 바꿔 가며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감사하죠.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하루에 보통 한 번만 합니다. 시드니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분들을 모셔야 해서 이틀 동안 4회 공연을 했어요. 첫날은 약간 흥분한 상태에서 환경도 익숙하지 않아 자유자재로 연기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날은 목이 좀 잠겨서 애를 먹었죠.
지금까지 ‘염쟁이 유씨’ 공연을 2천회 이상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염을 해본 적이 있나요?
- 물론 없죠. 시골이나 중소 도시에서 공연하면 제가 배우가 아니라 실제 염쟁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염하는 과정은 장례사에게 직접 배웠습니다. 배우면서 대사를 하지 않고 그냥 보여만 줘도 좋은 연극 한 편이 되겠다 싶었어요.
연극하시면 염을 직업으로 하는 분들이 관람하고 소감을 들려준 적 있나요?
- 많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에는 장례지도과라는 전문대학 과정이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단체로 보러 오기도 했습니다. 장례지도라고 하면 아직도 부끄럽게 여기던 사람이 많은데 이 연극을 보고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는 이 작품이 갑자기 유명해져 관객들이 극장 앞에서 100m씩 줄을 서는 바람에 장례업자들이 이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영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죠.
혹시 한국에 있는 대형 상조회사 같은 데서 스폰서 제의 같은 건 없었나요?
- 기획 파트에서 한 번 정도 제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굿바이’라는 영화가 상조회사 후원으로 제작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꽤 알려지 영화인데 그 때문인지 ‘염쟁이 유씨’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연극 중간에 시신 입에 넣어줄 쌀을 챙기지 않아 병풍 뒤로 가서 찾는 장면이 있더군요.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보여 걱정했습니다. 중요한 소품인데 그걸 잃어버리면 진행이 제대로 될까 싶었죠. 대본에 있는 건가요?
- 당연히 대본에 있습니다. 아마 가장 리얼한 부분일 겁니다. 설정을 그렇게 했는데 관객들이 거의 다 속습니다.
맞아요. 저도 속았습니다. 빨리 밖에 가서 쌀을 사와야 하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호주에서 4회 공연을 했는데 관객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 한국 관객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웃음 포인트는 비슷한데 반응이 반박자 늦다고 할까요. 또 한국처럼 마구 편하게 낄낄 깔깔하지는 않더군요. 약간 긴장돼 보였습니다. 연극을 관람하는 게 한국보다는 좀 낯선 경험이라 그런 것 같아요.
‘염쟁이 유씨’ 연극을 보면서 죽음 이야기를 통해서 죽음보다 더 어려운 삶의 의미를 드러내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20년 이상 연기하면서 유선생님이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 저도 잘 모르죠. 다만 오래 이런 연극을 하다 보니 먼저 내가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바램을 갖게 됐어요. 제가 이 작품을 40대 초반에 시작했는데 그 나이에 ‘이렇게 하는 게 잘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건방지죠. 무거운 주제다 보니 좀 더 나이가 들어 이 작품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삶의 연륜이 묻어나면 관객들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어느새 세월이 흘러 저절로 그 희망이 이루어졌어요. 더 이상 분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드니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 연극 중간에 관객을 모시고 소주를 마시게 하며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나? 언제 행복하고 언제 힘들었냐?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한국에서는 가끔 자기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거든요. 이런 사연이 배우가 연기하는 것보다 감동적일 때가 있습니다. 시드니에 와서 어쨌든 한국에 사는 게 아니라 한(恨)이라든가 애환 같은 게 터져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그런데 끌어내는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게 잘 안 나오고 물어보면 다들 행복하다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도 뭐 어쨌든 예상과 달리 행복하게 사시는구나 해서 안심이 됐습니다.
저를 소환하셨다면 아픈 얘기를 들려 드렸을 텐데요. (웃음)
- 그러면 그때 술을 마신다고 하고 빨리 나오셨어야죠. (웃음)
연극에서 사용하는 소주는 두 종류군요. 하나는 맹물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술이구요.
- 그렇습니다. 제가 마시는 병에는 맹물이 들어 있고, 관객에게 권하는 술은 진짜구요. 저는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하고 농담이 아니라 ‘근무’ 중에 술을 마시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죠.
바쁜 중에도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