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한국신문) 정동철 기자 = 한국어 강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 ‘코리안 티처’로 2020년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서수진 작가가 호주 시드니에서 처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북토크를 열었다. 지난 8월 29일 오후 6시 30분, 로즈 소재 앰퍼샌드 카페에서 ‘북앤시프'(Book and Sip)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서 작가는 첫 소설집 <골드러시>와 신작 장편소설 <다정한 이웃>을 소개했다. 북토크가 시작하기 전에 서수진 작가를 만났다.
‘코리안 티처’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2020년에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가지 못했죠?
- 네 맞아요. 국경봉쇄를 할 때라 호주에 있어야 했어요. 록다운 시기이기도 했고 저로서는 작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는데 갇혀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코리안 티처’를 썼나요?
- 코로나 터지기 전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쓰는 과정에 봉쇄령이 내리고 뭔가 빠르게 진행된 기억이 있어요. 덕분에 좀 더 글쓰기에 침잠해 들어갈 수 있었죠. 제가 한국 작가인데 호주라는 섬나라에 있다 보니 고립감도 들었어요. 호주에서 한국어를 쓸 때 거리감도 자주 느꼈습니다. 국경봉쇄와 록다운 같은 게 터지면서 고립감이 심해져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호주에 온 지 얼마나 됐죠?
- 멜번에서 2년 정도 살고 그 다음에 한국에서 몇 년 살다가 다시 호주에 와 시드니에서는 한 5년 정도 됩니다.
한국에 살 때에도 계속 작품 활동했나요?
- 네. 작가 지망생으로 있었어요. 한겨레 문학상으로 등단한 셈이죠. 명지대 문창과에서 석사를 했어요. 대학 전공이 국문학이라 마지막 학기에 소설을 써서 이화여대 글빛 문학상에서 당선돼 이 쪽으로 확 튼 계기가 됐어요.
작가를 지망했으면 한국에서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요? 어떻게 호주에 오게 됐어요?
- 작가 지망생으로 지내면서 좀 안 되겠다 싶었어요. 이제 그만 두기로 결심하고 호주 멜번에 처음 갔는데 그래도 글은 계속 썼어요. 그러다 진짜 포기해야지 하면서 한국어 선생 일을 했는데 거기서 오히려 ‘코리안 티처’를 쓸 수 있는 좋은 소재를 발견했어요.
외국에서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해외 생활이 쫓기듯 바쁜데 어떻게 문학상을 받을 만한 걸작을 썼는지 비결이 있다면?
- 제가 이제까지 상을 받았던 작품들은 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썼어요. ‘코리안 티처’도 지금은 그렇게 못하는데 딱 6주 만에 완성했어요. 코로나 록다운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줄곧 글을 썼어요.
시드니에서 처음 독자를 만나는데 기분이 어때요?
- 많이 긴장돼요. 한국에서는 북 콘서트를 여러 번 했어요. 호주에서는 호주인 독자를 대상으로 애들레이드에서 한 적 있어요. 독일에서도 했군요. 지금은 진짜 제 소설에 나오는 시드니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 마치 책의 주인공과 만난다는 기분이 들어요.
오늘 소개하는 <골드러시>는 어떤 주제를 담고 있나요?
- 이 책은 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주로 이 호주에 사는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구요.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비애와 애환이 있고 한국인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는지, 우리 안에 있는 계급의식이나 새로운 문화를 드러내려고 했어요.
이민자는 모국이나 현지 국가 어느 주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부 집단입니다. 어떻게 그런 주변인 이야기가 한국 문단과 독자들의 인정을 받게 됐다고 보는지요?
- 굉장히 새롭기 때문이죠. ‘골드러시’도 여기 이민자들이 거칠게 말하면 고생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호주에 사는 한국인에게는 평범한데 한국에서는 굉장히 새롭다고 하더군요. 더구나 한국 문단에는 전에 없던 이야기나 또 요즘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그게 하나의 흐름이 된 것 같아요. 한국인 이민자가 700만이라고 하는데 그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해 주는 작가가 이제까지 없었던 게 아닐까 해요. 1세대나 1.5세대 심지어 2세대까지 자기 이야기를 한국어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고 그래서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본인 소설이 가진 장점과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사실성이죠. 제 소설을 읽은 평론가들은 ‘핍진성’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이걸 읽으면 정말 리얼리티가 느껴진다는 거죠. 사람들이 진짜 살아가는 모습이 확 와닿는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묘사를 잘 하는 타입이 아니라 문장력을 약점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요즘은 건조하고 단순한 문장이 오히려 외과의사 같이 사실을 사실로만 전하기 때문에 전달력과 가독력을 높인다고들 합니다. 단순하고 간결해서 영어나 다른 언어로도 번역하기 쉽답니다.
본인 소설을 세계화하는데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 맞아요. 올해 4월에서 6월까지 독일에 작가 레지던스를 다녀왔고 11월에도 영국을 가게 되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재정 지원을 합니다. 이렇게 지원을 받는 이유는 제 소설이 가진 세계화 가능성 때문입니다. 소설이 번역됐을 때 외국인에게 확실히 다가가는 어떤 지점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이민자는 어느 정도 마이너리그 삶을 사는데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세계적 차원을 추구하고 있어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 저에게는 마이너리그라기보다 경계의 삶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이민자가 호주와 한국의 경계에서 삶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계에 사는 삶이 세계적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 이민자들의 삶에 좀 더 집중할 계획입니다. 단순히 호주에 있는 한국 이민자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경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드니에서 글을 쓰는 작가와 문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제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 여기에 있는 시간이 의미 없다고 느꼈어요. 한겨레 문학상으로 등단하기 전에 어렵게 얻은 직업이 잘 안되기도 하고 해서 절망했어요. 그때 한 친구가 ‘지금 의미 없는 시간이 언젠간 의미 있어질 때가 반드시 온다’라고 힘을 줬어요. 지금 그 때가 온 것 같아요. 의미 없다고 여긴 시기를 잘 견뎌냈기 때문에 지금 제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떤 경계에 선 듯 위태로운 삶이 의미를 지니게 될 때가 반드시 온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