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형 은행들, AI 기술 이용해 대출신청 평가… 콜센터 업무, 완전 자동화될 수도
“현 시점에서의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 1990년대 ‘인터넷’이 시작되는 시기와 유사하다”
1995년,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빗 레터먼(David Letterman)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설립자 빌 게이츠(Bill Gates)와 인터뷰를 했다. 이는 당시, 그저 한 유명 인사와의 만남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주 상징적인 대담이라 할 수 있다. 그 인터뷰에서 레터먼은 게이츠에게 ‘인터넷’에 대해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는 인터넷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를 의식한 듯 레터먼은 “도대체 그게 뭐야?”라고 다소 건방진(?) 태도로 물었다.
질문을 받은 게이츠는 인터넷과 이메일이 얼마나 혁신적 기술인지를 설명하려 시도했다. 그러자 레터먼은 인터넷을 통해 야구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I just thought to myself, does radio ring a bell?”
인터넷이라는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을 소개하는 게이츠의 설명에 대해 레터먼이 약간은 비꼬는 논조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즉 인터넷의 실시간 스트리밍이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라디오를 통해 실시간 중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박으로, ‘does radio ring a bell?’이라며 ‘반드시’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중계를 즐길 수 있는 것은한 아니라고 한 말이다.
어쩌면 레터먼은 의도적으로 가볍게 말했을 수도 있다. 사실 당시 인터뷰 내용은, 앞으로 인터넷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크게 뒤바꾸어 놓을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커먼웰스 은행(Commonwealth Bank. CBA)의 매트 코민(Matt Comyn) 최고경영자는 “현재의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은, 1990년대 중반 게이츠가 인터넷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당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열린 CBA 연례 주주총회에서 “AI에는 분명한 잠재력이 있지만 모든 위험을 통하여 안전하게, 대규모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확신이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수천 명의 은행 콜센터 직원,
AI 봇으로 대체될 수도
CBA는 공개적으로 은행 콜센터에서 Chat GPT 스타일의 AI 채팅봇(AI chat bot)을 시험하고 있다고 밝힌 호주 메이저 은행 중 하나이다. 이 시험이 성공적으로 평가된다면, 수천 명의 콜센터 직원이 이 도구(AI 봇)로 대체될 수 있다.
아직 일자리 감소의 전체적인 영향을 확인하기에는 이르지만 금융 부문 노동조합과 업계 전문가들은 은행 콜센터 부문에서만 수천 명의 실직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코민 CEO가 언급한 ‘위험’은 더 엄청날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관련되어 주택담보대출 신청에 대해 승인을 결정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현 시점에서 CBA만이 AI를 활용해 고객 전화에 더 잘 응답하고, 보안 검사를 수행하며, 신청된 대출심사 과정에서 해당 서류를 더 빠르게 평가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ABC 방송에 따르면 4대 은행은 이미 AI 기술을 적용해 이런 일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각 은행 책임자들은 AI 도구가 직원들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AI의 판단으로 대출승인 여부 등을 결정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ANZ 은행 팀 호가스(Tim Hogarth)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직원 급여 명세서와 같은 문서를 빠르게 확인하거나 복잡한 대출 계약을 평가하는 데 있어 AI 도구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술은 고객에게 자금 활용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가스 CTO는 “미래에는 AI가 그런 패턴을 더 쉽게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집된 모든 자료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AI 도구, 이미
대출서류 검증하는 수준”
AI는 현재 사람이 하는 작업을 더 잘 수행하고 주택 대출 승인 여부와 같은 중요한 결정에도 더 많은 부분에 관여하고 있다. 호가스 CTO는 “이에 따라 일부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예측한다.
CBA와 마찬가지로 ANZ 은행도 콜센터 직원 1,200명의 보조 역할(over-the-shoulder assistant)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ANZ 은행은 얼마 전 멜번, 도클랜드(Docklands, Melbourne)에 ‘AI immersion centre’를 개원했으며 3,000명의 직원들에게 AI를 활용한 업무 수행 방식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Google), 아마존(Amazon)을 포함한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의 선도적 기업과 틈새 스타트업들도 AI 기술을 개선해 가는 중이다.
호가스 CTO는 “이 기술을 활용해 은행이 고객을 위해 보관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매우 빠르게 요약하고… 고객의 궁금증에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AI는 또한 이 은행(ANZ) 직원들이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대출 고객의 재정적 어려움 상태를 식별하여 상황이 심각해지면 고객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판매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기 전, 해당 고객과 상호 논의를 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고객을 인증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다만 그는 AI 봇을 통해 주택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아직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 5~10년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AI를 이용한
NAB의 고객 추적
National Australia Bank의 데이터 전략 실행 책임자인 제시카 글리슨(Jessica Gleeson) 이사는 문서를 분류하고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AI를 시험 중에 있다고 말했다. NAB는 AI를 투입함으로써 이 서류작업 시간을 45분에서 5분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은행은 또한 고객 신원 확인 및 ’감정 분석‘(emotional sentiment analysis) 부문에서도 AI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AI가 직원-고객간 대화를 해석하고 요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글리슨 이사는 “우리의 비전은 AI를 통해 직원들로 하여금 고객에게 적절한 수준의 공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NAB 콜센터 직원은 하루에 약 100통의 전화를 받으며 서로 다른 요구사항을 가진 다양한 고객을 상대하고 있다. 글리슨 이사는 “우리는 직원과 고객이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면서 “대규모 언어 모델을 활용해 (대화 내용) 요약과 통화종료 메모를 만들 수 있다면 직원은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고, 곧바로 다음 전화를 받을 수 있기에 더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AI를 활용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점은 계획에 없다”며 “이(AI)는 사람들의 일자리에 역량을 만들어주는 도구로 본다”고 덧붙였다.
AI 활용에서 은행이
보다 더 투명해야 하는 이유
이런 가운데 금융 부문 노동조합은 은행 업무에 AI가 활용되는 방식, 더불어 이로 인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손실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 금융노조 니콜 맥퍼슨(Nicole McPherson) 부사무총장은 “대형 은행 중 일부가 콜센터 직원을 AI로 대체한다면 호주 전역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금융노조)는 은행 직원의 업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투명성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업무에서의 AI 도구에 대해 “근로자들이 기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테스트 되지 않은’ 기술이기도 하여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주장했다. “현 시점에서 시험되지 않은 기술을 사용하고 일자리를 줄이며, 그럼으로써 가장 윤리적이고 훈련된 근로자들이 매우 중요한 업무에서 밀려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감정 분석’에서의 AI 사용.
“오해의 소지 있다”
맥퍼슨 부사무총장은 감정 분석에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경고한다.
그녀는 최근 금융 부문 직원 중 한 명이 고객과 통화를 하다가 AI가 잘못 해석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들(은행 직원과 고객)은 날씨에 대해 매우 평범한 대화를 했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어요’라고 대화를 이어갔다”고 회상한 그녀는 “나중에 이 대화를 AI가 분석했을 때, AI는 이를 ‘부정적인 고객과의 상호작용’이라고 해석했다. 왜냐하면 직원은 ‘불행히도’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맥퍼슨 부사무총장은 “분명 부정적인 상호작용은 아니었지만 이런 문제는 현재 AI 활용 과정에서 생겨나는 큰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AI의 금융 ‘자문 지원’과
‘자문’ 사이의 미묘한 경계
AI의 잠재력은 흥미진진하지만 실제로는 한계가 있다. 아울러 규제가 엄격한 은행 업계에서 법적 경계를 넘기 전, AI 봇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에는 제한이 있다.
가브리엘 산귀뇨(Gabriele Sanguigno)씨는 스타트업 ‘ToothFairyAI’의 대표이다. 그는 연금 기금(superannuation funds)이 고객의 재정 상태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는 AI 도구를 만들었고, 4대 은행에 이를 알리고 싶어 한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조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주택 대출 심사 절차를 가속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금융 자문을 제공하거나 대출에 서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산귀뇨씨는 “AI 에이전트는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낼 수 있고, 또 대출을 재융자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몇 가지 옵션을 제시하는 게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항상 사람이 마지막 확인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AI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지에 대한 과장된 말들이 있다”고 전제한 뒤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대다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빨리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 컨설팅 회사 IBRS의 분석가 조 스위니(Joe Sweeney) 박사도 콜센터 일자리가한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주택대출 결정에 반영되는, AI 제공 답변이 금융 자문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가 큰 과제라는 의견이다. 이는 ‘누가 금융 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과 잠재적으로 책임 있는 대출 방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예기다.
이어 “은행 부문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금융 자문을 제공할 수 없다”는 스위니 박사는 “AI가 실제로는 해서는 안 될 답변을 하게 하는 일련의 질문을 만들 수도 있다”면서 “이것이, AI 설계와 AI에 공급되는 정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유”라고 말했다.
아울러 스위니 박사는 “사람들은 AI가 실제보다 더 큰 용량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특히 금융 회사 또는 특정 행동 규범에 따라 관리되는 기관의 경우 AI가 실수를 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런 실수가 규정 위반이라면 해동 조직은 실제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정이 AI 기술을
따라갈 수 있을까…
현재 AI 기술의 발전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각국의 관련 규칙 제정에 비해 더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은 인공 지능을 규제하는 법률을 도입했다. 이 법률에 대해 호주 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의 로레인 핀레이(Lorraine Finlay) 위원장은 “호주가 고려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우리(호주)는 기술이 잘못되고 해로운 영향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글로벌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현재 인권위원회는 고객의 대출 신청 결정 과정에서의 (AI의) 편견을 없애고자 호주 대형 은행들과 협력하여 AI 프로세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핀레이 위원장은 “예를 들어 주택 대출과 관련하여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 사람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에 특히 우려하고 있다”며 “은행이 AI 사용을 결정하더라도 고객에게 공개하고 ‘항상 사람이 관여한다’(there’s always a human in the loop)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 부문에 대한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 조사가 이루어진 뒤, 지난 2019년 4월에 공개된 최종 보고서에 담겨 있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는 ‘호주 국민들이 너무 많은 빚을 안고 있으며 집과 사업체를 잃게 만든, 잘못된 결정을 내린 이들’에 대한 것이다.
만약 기계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는 은행들이 직면한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점에서 핀레이 인권위원장은 “사람들의 삶에 정말로 큰 영향을 미칠 최종 결정은 AI 도구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