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금기에서 시작, 독특한 언어 변형으로 감정 또는 태도의 강한 표출에 활용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멜번(Melbourne)에서 성장한 뒤 지금은 한국에 거주하며 방송인으로 일하는 샘 해밍턴(Samuel Mayer Russ Hammington)씨는 언젠가 한국의 한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취지였다). “영어권 국가에 비해 한국에는 욕(swear word)이 너무 많고 아주 다양하다. 한국의 욕은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해도 된다.”
비록 그가 한국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오랜 시간 한국에서 일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살고 있음을 감안하면, 한국 욕설의 적재적소성 및 각 욕설이 가진 여러 단계의 강도를 이해하고 있기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또한 그런 한편으로, 그의 말처럼 한국의 욕설은 충분히 수출가능한 ‘문화 상품’(오해하지 마시라.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만큼 다양하고 강도 조절 가능한 욕설이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장면에서 긴장감이나 오락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겠다는 것이다)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아무튼.
라디오를 즐겨 듣는 60대의 케이트 리(Kate Lee)씨는 어린 시절, 상대를 모욕하는 단어 중 하나인 ‘bum’(부랑자 또는 엉덩이를 가리킴) 사용이 어머니에 의해 완전히 금기시됐었다고 말했다. 87세의 그녀의 어머니는 지금도 ‘F’ 자 욕설(f-word)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거의 모든 말에 ‘bloody’(빌어먹을, 지랄 같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며 웃었다.
심지어 리씨의 할머니 안나(Anna)씨는 이웃과 대화할 때 “자주 ‘c-bomb’을 떨어뜨리곤 했다”고 말했다. c-bomb은 강력한 코발트 폭탄을 의미하지만 또한 ‘cunt’(비열한 놈, 여자 X기)에 버금가는 강한 욕설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녀가 c-bomb을 ‘떨어뜨린다’고 표현한 것은, 가만큼 강력한 폭탄급 욕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리씨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욕설과 강한 연관성을 가진 많은 호주인 중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호주인들 또한 욕설 사용이 많다는 뜻이다.
욕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크게 바뀌어 왔고,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한때 공격적 욕설이었던 ‘gadzooks’(화가 났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호주 slang. 욕설이지만 그 강도는 세지 않은 편이라 할 수 있다)에서 긴 시간의 시험을 거쳐 신체 부위를 비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욕설은 어디에서 왔으며, 또 사람들은 왜 욕을 사용하는 것일까.
욕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
모나시대학교(Monash University) 언어학 선임강사인 하워드 만스(Howard Manns) 박사는 우리가 욕설을 내뱉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발가락을 찧었을 때 등 (스스로에게) 화가 나 내뱉는(expletive) 기능이 있다. 또한 욕이나 가학적인 말(물론 가벼운 욕설이다)로 연대감을 표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funny bastard’라고 말함으로써 더 친근하게 느끼고 있음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런 측면에서의 욕설은 사실 전 세계적이다.
만스 박사는 “친구를 ‘놈’이든 ‘녀석’이라 하든 친밀감을 나타내는 것은 많은 언어와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이는 개나 다른 동물들이 장난스럽게 서로를 물어뜯는 방식에 비유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도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장난스럽게 물어뜯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욕설은 언어에 독특한 변형을 주어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 표출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이 기능에 대해 만스 박사는 “절대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Sure, I can say ‘absolutely’)라며 “여기에다 if I say ‘abso-bloody-lutely’라고 약간의 욕설(bloody)을 추가한다면 좀더 자극적이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욕설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욕은 금기에서 유래됐다. 그래서 ‘gadzooks’가 한때는 욕설로 여겨졌다. ‘God’s hooks’에서 따온 이 단어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때 사용된 못(nail)을 가리킨다.
만스 박사는 “만약 여러분이 고대 영국 시대로 돌아간다면, 당시의 종교적 금기들은 여러분의 욕설에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게’ 가혹한 금기들이었다”고 설명했다.
‘Damn’은 또 다른 예이다. 14세기로 가 보면, 이 단어는 오늘날 ‘f-word’만큼이나 강도가 센 욕설이었다. 만스 박사에 따르면, 그 시대 영국인들이 이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프랑스인들이 영국 사람들을 지칭할 때 ‘damn’이라 불렀을 정도이다. 그만큼 당시 영국인들은 이 단어를 자주 내뱉었고 프랑스인들이 이 말을 지속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년에서 1901년, 빅토리아 여왕 통치 기간)에는 욕설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가 많았다. ‘breast’나 ‘leg’와 같은 단어는 오랫동안 아주 자극적이고 불편한 말로 여겨졌다. 오늘날에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불편이나 자극을 주지 않고자 완곡어법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어 닭가슴살을 ‘white meat’, 닭다리를 ‘dark meat’로 부르는 식이었다. 당시 사람들의 언어 표현이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만스 박사는 “아마 지금도 이렇게 칭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잔재”라고 말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에게는 부적절하지만 남성에게는 허용되는 단어가 있었는데, 특히 욕설의 영역에서 그러했다. 만스 박사에 따르면, ‘언어 위생’(verbal hygiene.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한 것으로, 종종 언어 규범을 지배적인 문화 가치에 맞춰 조정하며 사용된 언어가 예의 바르고 존중심을 전달하도록 한다는 의미)과 ‘말하는 방식을 주의하는 것’(watching the way you speak)은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이를 바꾸려는 ‘언어 사용 행동주의’(verbal activism) 움직임이 있었다. 그 주도적인 인물로 만스 박사는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와 같은 이들이 있었다면서 “이들은 먼저 대중 앞에서 이런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여성들의 말을 통한 표현 상의 금기 중 일부를 허물어버리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남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여성들도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저메인 그리어씨는 호주 작가이자 대중 지식인으로 1960년대 이후 2차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한 주요 인사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리어시를 비롯해 이를 시도했던 일부 여성들은 ‘언어 행동주의’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예를 들어 그리어씨는 1972년 뉴질랜드의 한 타운홀 회의에서 ‘bullshit’, ‘fuck’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혐의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했었다.
욕설에 묻어 있는 체액은…
모든 욕설이 시간이 지나며 변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체 부위나 체액과 관련된 욕설은 조금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이런 단어는 일상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계속해 금기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만스 박사는 빅토리아 주 하이스쿨 학생들을 관찰하고, c-word를 다른 이들과 관련된 모욕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모나시대학교 딜런 휴즈 박사 연구원(PhD researcher Dylan Hughes)의 연구를 언급하면서 “하지만 학생들은 성차별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분명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단어(c-word. cunt를 가리킴)는 여성의 생식기 또는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을 뜻하는 저속한 단어로, 영어에서 가장 공격적인 f-word와 맞먹는 강도의 욕설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어권 국가에서 누가 가장 욕을 잘할까, 아니면 적어도 욕설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만스 박사는 호주인들이 다른 국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욕설을 담아 말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좋든 나쁘든(?) 호주는 미국인들보다 욕설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일까.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