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W 식민지 시절, 식량생산 장려 위해 ‘NSW Agricultural Society’ 설립
지금의 ‘Royal Agricultural Society of NSW’, 농업-목축산업 번영에 주력
‘이스터 쇼’(Easter Show) 또는 ‘더 쇼’(The Show)로 간단히 칭하기도 하는 ‘Sydney Royal Easter Show’는 1823년 시작된 호주 최대 규모의 농산물 경진대회이다.
매년 부활절이 있는 4월, 스쿨 홀리데이 기간에 맞춰 12일간 이어지는 이 행사는 그해 가을 수확한 농산물 품평은 물론 농업 쇼, 놀이공원, 박람회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 이벤트에 ‘로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개최 당시(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행사 명칭에 이 단어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때문이다.
농-목축 경진대회뿐 아니라 이스터 쇼에는 공예, 사진예술, 요리 등 많은 대회가 있으며 장작패기 등 힘과 기술을 선보이는 경연이 펼쳐진다. 또 다양한 먹거리, 쇼핑,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최고 인기인 쇼백 파빌리온(showbag pavilion) 및 갖가지 주제의 전시회, 무대 공연, 경기장의 쇼, 호주 국가 인증의 애완동물 쇼가 포함되어 매년 100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올해는 이스터쇼가 시작된 지 꼭 2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이 쇼는 어떻게 시작되어 호주 최대 이벤트 중 하나가 되었을까.
제6대 NSW 식민지 총독(1821년 12월 1일-1825년 12월 1일)으로 부임한 토마스 브리즈번 경(Sir Thomas Brisbane)은 아직 완전하게 정착하지 못한 신생 식민지(당시 NSW)의 더 많은 식량 생산 필요성을 깊이 우려했다.
이에 따라 보다 나은 토양에서 식량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기 위한 노력으로 기존 원주민 인구를 내륙으로 끌어들이고 농산물 생산을 유럽식 모델로 바꾸고자 했다.
브리즈번 총독은 영국식 사고를 가진 과학자였지만 담배, 목화, 커피 재배에도 관심을 갖고 재배실험을 했으며 농산물 생산 경쟁을 유도하고자 ‘NSW Agricultural Society’를 설립했다.
오늘날 ‘Royal Agricultural Society’(RAS)가 된 이 기구는 이후 호주의 농업을 촉진,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 호주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개빈 프라이(Gavin Fry)씨는 ‘Royal Agricultural Society of New South Wales’ 200년을 기해 출간한 ‘Sydney Royal’이라는 제목의 서적에 호주 농업의 지난 시간들을 담아냈다.
호주 농업 초기의 실수;
토끼와 여우 그리고 블랙베리
프라이씨는 최근 ABC 방송 ‘ABC Rural’ 프로그램에서 “Agricultural Society를 설립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며 그 배경 중 하나로 “영국 정착자들의 농작물 재배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초기, 호주로 온 가축들은 번식하는 것이 매우 평범했고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가축의 질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백인들은 어리석게도 토끼와 여우 등 갖가지 동물을 들여왔다.
이중 특히 토끼가 문제였다. 토끼들이 정원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귀여웠지만 불행하게도 토끼들이 (엄청난 번식력으로) 정원은 물론 농장을 차지,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농업에 대한 보다 과학적 접근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델을 NSW 식민지에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식민지 초기,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했던 NSW 주에서는 토지에 바위 등이 많아 영국 모델을 활용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프라이씨는 “이런 문제로 NSW의 농업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실험, 가축의 교배, 올바른 종자, 각 지역에 맞는 동식물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정적 인센티브에서
메달 수여로
초기 RAS는 NSW의 농업 진흥과 농산물 생산 장려를 위해 우수 농산물 생산자에게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했지만 얼마 안 가 메달 수여로 바꾸었다. 프라이씨에 따르면 RAS 초기, 농산물 경진대회(이스터 쇼)에서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보상하고자 그만큼 많은 상을 수여했다.
그러다 RAS는 일반인에게 보상을 하게 되면 농장 근로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농장 노동자, 죄수이거나 강제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수여되는 것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프라이씨는 “가령 1년 내내 양몰이 일을 시키고 연말에 죄수인 농장 노동자에게 1파운드를 주는 농장주에게 금전적 보상을 한다면 이들은 일을 하기 보다는 보상을 받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에 치중할 것”이라며 “이는 결코 농장 사업에 득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AS는 지속적으로 농장 운영자들 사이의 경쟁의식을 부추겼고, 이는 농산물 생산 증가로 이어졌다.
원주민 및 토지에 대한 영향
이번 프라이씨의 책에는 또한 식민지 당시의 농업 부문 성장이, 원주민 및 이들이 수천 년 동안 관리해 온 토지를 어떻게 희생시켰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첫 죄수 호송선인 ‘제1함대(First Fleet)가 시드니 코브(Sydney Cove)에 닻을 내린 후 지금의 록스(The Rocks)에 정착한 영국 관리들은 당연히 농산물 생산을 위한 탐험에 나섰고, 맨 처음 주목한 곳이 지금의 파라마타(Parramatta)였다. 강을 끼고 있어 농장으로 개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 지금의 블루마운틴을 넘어 시드니 서부 내륙으로 가는 길을 탐험했고, 농장 개발을 확대해 나갔다. 프라이씨는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많은 희생을 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시드니 인근에서 원주민들이 가장 여유 있게 살았던 곳은 지금의 파라마타를 중심으로 한 시드니 서부, 컴벌랜드 평원(Cumberland Plain) 지대였다.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원주민들에 의해 토지가 개발, 관리되어 온 곳이었다.
백인들은 이 지역을 발견한 뒤 식민정부에 “농사를 지을 만한 멋진 곳이 있다”고 보고했고, 백인들이 강제로 토지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저항하면 무력으로 억눌렀다.
‘Dark Emu’의 작가 브루스 파스코(Bruce Pascoe)는 원주민 농업, 양식업, 식료품 저장 및 보존방법이 백인 정착자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됐다고 제기한 바 있다. 그가 2014년 출간한 이 책은 논픽션으로 백인정착 이전 호주 원주민들의 농업, 엔지니어링, 건축기술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백인들이 이 땅에 도착한 이후 원주민 농업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기 위한 더 많은 고고학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혁신은 계속된다
‘Royal Agricultural Society of NSW’의 마이클 밀너(Michael Millner) 회장은 RAS에 대해 “초기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식량생산 개선에 중점을 두었지만 지금은 농업 종사자들의 번영을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식민지 초기, RAS는 혁신적 활동가들이었다. 1800년대 초에 양모 생산을 위한 양 목축 및 곡물재배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밀너 회장은 “지금의 CSIRO(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가 구성되기 전, RAS는 밀을 재배하고 가축 사육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 주력했으며 농산물 종사자들로 하여금 선의의 경쟁을 지속하도록 했다”면서 “이것이 호주 농업의 우수성을 만들어낸 핵심 원칙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새로운 농업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Royal Agricultural Society of NSW’가 매년 이스터 기간에 개최하는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Sydney Royal Easter Show)는 매년 거의 100만 명을 유치하는 호주 최대 티켓 이벤트(입장권을 구입해 관람하는)이다. 이를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금은 RAS의 농업 프로그램, 농산물 경진대회, 교육 등에 투자된다.
한편 올해 시드니 로얄 이스터 쇼는 4월 8일(금) 개장했으며 4월 19일(화)까지 시드니 올림픽 파크(Sydney Olympic Park)에 있는 시드니 쇼 그라운드(Sydney Showground)에서 펼쳐진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