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미터의 세상
아침 햇살이 나무 대문을 비스듬히 밀고 있는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 줄에 묶여 낑낑거리고 있다
5미터 목줄을 외로 감았다
우로 감았다
이깟 밥그릇 아무 것도 아니라고
뒤집어엎다가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의 세상을 잡으려
지난밤 웅크렸던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건너 어슷하게 열린 블라인드 창문 틈으로
지는 빛에도 위로 받는 사람들
시드니 파라마타 치매 병동
나가는 번호 0911을 누르지 못해
방문객 찾아든 방 앞을 서성이다가
오고 가는 위로가 잦아드는 밥 때
간병인들이 식판을 들고 오면 헬렌 스미스 그리고 김씨,
멀어지는 5미터 밖의 세상을 놓지않으려
발을 들었다 놓았다
콩콩거린다
휠체어를 밀어도 알아보지 못하던
아들 딸도 돌아간지 한참
뉘엿뉘엿 햇볕을 쬐던 박씨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옅어지는 볕 걸쳐진 창 틈으로
멀어져 가는 세상에게 한마디 한다
오늘 밥은 참 따뜻했어
시작노트
십여 년 전에 파라마타 치매 병동을 가본 적이 있다. 하늘로 가기 위해 세상의 기억을 반납한 사람들이 사는 곳. 찾아뵌 친척분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내가 남아 있었는지 하시던 일을 내게 넘겨주마고 열심히 설명을 이었다. 어쩌면 기억을 잃어도 몸이 기억해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초기라 몇 개월 후 퇴원 하셨고 나는 잠시 그 기억을 붙들고 있다가 놓아버렸다.
얼마 전 한인 요양 병동에서 그날의 느낌을 다시 만났다. 지인이 갑자기 입원해 몇 번 방문 하게 되었다. 기억은 살아 있지만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자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요양 병동으로 나앉은 사람들이었다. 라운지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아들이고 있다가 찾아든 방문객들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날 보았던 몸이 기억하는 삶과 겹쳐졌다. 하늘로 가기 위해 세상의 몸을 구별해 나앉은 사람들의 기억이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