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롱가* 동물원에서
개찰구에서 분홍색 입장권이 손목에 채워지는 순간
견디는 쪽으로 기우는 서늘함이 손목을 조여온다
이런 바닷가에 기린의 목처럼 길게 솟은 집을 짓고 싶어 했던 당신
바랑가루 빌딩 23층 글로벌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며 나를 초대했었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전망 좋은 일터래, 저기 건너 타롱가 주가 보이지? 내 꿈의 반은 이룬 거야
워터 뷰가 출세의 입장권인 양 좋아하던 당신과
타롱가에 아파트를 지으면 정말 잘 팔리겠다고 하던 친구의 얼굴이
같은 어둠으로 겹친다
어쩌자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이 멋진 조망권을 동물과 건물에 빼앗겼단 말인가
아름답다는 느낌에는 태생적 슬픔이 도사린다
싸구려 아름다움과 고결한 빈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
우리가 우리에 갇힌 우리가 되어 우리로 같아지는 세상에 대하여 생각한다
인성이 사라진 인간과 동물성이 사라진 동물
우리 안으로 먹이 하나 슬쩍 던져주고 갈비뼈까지 스캔해 가는
사회관계망에 걸린 우리
어젯밤에도 나는 보낼수록 되돌아오는 말꼬리에 끌려다니다가 끝내 내 몸이 게워낸 뿔과 마주했다 함부로 들키면 안 되는 검붉은 말이었다
분홍 팔찌를 떼어 버리고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발뒤꿈치에서 검디검은 피가 흐른다
반인반수의 피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경치’란 뜻의 원주민 어로, 하버 브리지가 보이는 바닷가에 자리한 시드니 주립 동물원 이름이다.
시작노트
날마다 태어나고 날마다 죽어가는 빛의 노동이 나의 시 짓기와 비슷해 보인다. 반복되는 노동을 멈출 수 없어 나는 죽어갈 빛을 또 생산한다. 그리고 다시 깜깜해진다. 언어의 시체들이 겹겹 쌓여 진실을 덮는다. 말하지 못한 것과, 말할 수 없는 것까지 이해받고 싶어 문장이 자꾸 길어진다. 행간의 비밀을 나누어 가진 당신들이 멀어지는 게 자꾸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