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부르는 靑山別曲
푸른 안개
시드니에는 푸른 빛을 내는 산이 있다. 말 그대로 블루마운틴이다. ‘푸르다’라는 말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말이 또 있을까. 산이건 바다건 하늘이건 삼라만상을 다 아우르는 ‘푸른’의 정체성이 못내 못마땅했는데 시드니에 와서 진짜 푸른 산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산을 ‘靑山’이라 부른다.
밤이 걷히고 태양이 산을 말리기 시작하면 청산의 푸른 빛은 절정에 다다른다. 유칼립투스가 뿜어내는 알코올 섞인 유액 성분이 햇빛과 공기를 만나면서 독특한 색을 만들기 때문이다. 오래전 호주 원주민들은 이를 두고 ‘푸른 안개’라고 표현했다. 짙게 깔린 새벽안개를 밀어내면서 서서히 퍼지는 푸른 안개를 상상해 보라. 산의 심장에서 빠져나와 온 누리에 퍼지고 있는 푸른 숨결을 보고 있으면 ‘색은 인간의 영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라고 했던 칸딘스키의 말이 실감 날 것이다. 안개가 걷히며 서서히 드러나는 산의 실루엣은 감추어 두었던 조물주의 보물인 듯 신묘하기 그지없다.
블루마운틴은 2000년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보물은 워낙 방대해서 지금 어느 한 곳이 훼손되고 있다 해도 우리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다. 몇 해 전 80만 헥타르를 태운 산불의 후유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청산은 이제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에 앞서,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 방법을 먼저 배우라는 청산의 당부인지 모른다.
푸른 비밀
모국어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나는 호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을 토요 한글 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말 스포츠나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하는 바비큐 파티를 반납해야 했다. 가까이에 교민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한글 학교가 있었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곳을 찾다 보니 먼 거리를 오가게 되었다. 주재원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였다. 학제도 한국학교와 똑같았다. 큰애는 3학년이었고, 작은애는 막 입학한 때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놓고 나는 긴 시간을 떼우 듯 보냈다. 주로 차에서 책을 읽거나 쇼핑센터를 찾았다. 가끔 학교에서 손이 필요하면 보조 교사 노릇을 했는데 공과 자료를 만들거나 시험지를 채점하는 일이었다. 그날도 채점을 도와 달라는 요청으로 1교시에 친 시험지를 보고 있었다.
한자어 운을 그대로 한글로 풀어 쓰는 문제였다. 나는 채점하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나를 웃게 만든 건‘靑山 : 블루마운틴’이라고 쓴 답이었다. 정답은 ‘청산’이었다. 한글로 ‘블루마운틴’이라고 썼으니 나름 선전한 것이다. 비록 운은 틀렸지만, 뜻은 정확히 알고 있는 이 학생의 답답함과 간절함이 읽히자 웃음을 마냥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담당 선생님도 오답이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내내 신경이 쓰였다. 붙박이 교민 자녀인데 엉뚱하고 재미있고 착한 아이라는 배경 설명만 듣지 않았어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역사가 개인을 다 말할 수 없어 문학이란 장르가 태어났다고 했다. 한 개인의 삶을 문학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 채점을 끝내고 나는 다시 ‘블루마운틴’이란 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내 마음대로 정답으로 둔갑시켰다.
이십 년 전쯤의 일이다. 지금 이 사건을 두고 문제 삼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에 있다 해도 증거가 남아있을 리 만무하니 기억의 오류라고 발뺌하면 된다. 다만, 원칙주의자인 내가 원칙을 깨버린 지점에 ‘청산’과 ‘블루마운틴’이 함께 있었다는 말이 하고 싶어 꺼낸 말거리이다. 청산을 호명할 때마다 따라 올라오는 작은 비밀 하나가 <시드니에서 부르는 청산별곡>의 서곡이 되었으니까. 긴 시간을 거쳐 뜻밖의 형식으로 도착하는 한 편의 시처럼 말이다.
푸른 맥박
아이들이 토요일까지 공부를 하는 동안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이민자 영어 학교에 다녔다.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샐러드 볼이 생각났다. 다른 억양, 다른 피부, 다른 냄새가 뒤섞여 영어라는 소스에 버무려지고 있었다. 영어라는 이 소스는 정말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먹는 사람이 아니라 버무려져야 하는 재료일 뿐, 문득문득 아득해지곤 했다. 그래도 스튜나 죽보다는 낫다고 위로를 했다. 샐러드는 그나마 자신의 근본은 잃지 않으면서 타자와 뒤섞일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게다가 호주는 다문화를 인정하는 나라이다. ‘호주 정신’ 같은 것을 심하게 강요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영역을 지키다가 조금씩 섞이면서 흐려지면 되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이민 새내기 미국 교민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는 설문조사를 했다. ‘예’라고 대답한 사람과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이 거의 반반이었다고 한다. 그 대답의 기준은 간단했다. 영어를 잘하면 머물고 싶고, 아니면 돌아가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교실에서 늘 돌아가고 싶었다. 뇌는 1,000리터 용량인데 입은 10리터 용량이었다. 극도의 예민함과 자포자기의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오곤 했다. 영어 선생은 눈만 마주치면 질문을 해댔다. ‘어버버 ~ 암 ~’답이 징검다리처럼 끊어져도, 앞뒤가 맞지 않아도, 문장이 끝을 맺지 못해도 웃으면서 기다려 주었다. 그때 그 웃음이 나는 왜 그리 건조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렇게 소스가 제대로 스미지 못하고 재료가 여전히 겉도는 와중에 호주에 대해 아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머릿속에 있던 답은 말풍선 속에서 한국어로만 와글거리고, 내게서 나오는 입말은 영어 단어 네댓 개가 전부였다.
“Kangaroo, Southern Cross, Aborigine, and Great Dividing Range……” 답을 듣고 있던 선생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되물었다.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을 어떻게 알고 있니?” 그러게, 실은 나도 놀랐었다. 학교 다닐 때 앵무새처럼 외우다가 입력된 이름이 자동으로 튀어나온 것인데 말이 짧아 무식해 보이는 동양 여자 입에서 나온 단어치고는 좀 의외였던 모양이다. 이후로 나는 호주인들과 말을 틀 때 이 산맥 이름을 자주 등장시켰다. 작은 투자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질 좋은 자료였다. 이렇듯 길게 이 사연을 늘어놓는 이유는 블루마운틴이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의 한 자락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은 호주의 동해안을 따라 퀸즐랜드 주의 북쪽 끝에서 시작해서 빅토리아 주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맥을 말한다. 길이 3,500km이며, 폭은 160km에서 300km가량이라니 육상의 산맥으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산맥이라는 기록이 실감 난다. 이 중 시드니 근교에 자리한 블루마운틴은 산맥의 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대하다. 힘줄처럼 뻗은 산자락은 절정을 향해 뛰는 청년의 맥박처럼 푸르디푸르다.
시드니 중심가에서 44번 도로를 타고 1시간 30분쯤 달리면 청산 초입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내륙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길게 이어진다. 산등선을 타고 1시간 이상 달리는 자동차를 본 적이 있는가. 푸른 하늘과 초록 바다를 가르며 헤엄쳐 가고 있는 한 마리 고래를 상상하면 된다. 이 고래는 크고 작은 산간 마을을 거쳐 달리다가 카툼바Katoomba라는 표지를 만나면 바로 멈추어 숨을 뿜어낸다.
푸른 추억
나는 청산의 산간 마을들을 좋아한다. 이중 카툼바는 겨울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기에 남다르게 마음이 간다. 오래된 펍이 있고, 허물 벗는 나무가 있고, 마을을 일구어낸 개척자들의 흔적이 있고, 7월의 크리스마스가 있다.
12월은 산타할아버지도 수영복을 입고 다닐 정도로 더운 호주에서 눈 덮인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호주로 끌려온 아일랜드계 죄수들은 고향의 눈 덮인 풍경을 그리워했다. 특히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그들의 노스텔지어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들은 블루마운틴에 가끔 내리는 눈을 찾아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청산 카툼바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나는 카툼바에서 여러 번 7월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한국에서 온 J 선생 부부와 카툼바 주민인 K 그리고 지금은 웬트월스폴스 주민이 된 P와 함께했던 파티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J 선생 부부는 이날의 추억을 당신의 저서에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그동안 갇혀있던 영혼이 열렸다는 문장도 함께였다. 청산의 80%를 차지하는 유칼립투스의 꽃말이 ‘추억’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겨울 청산은 멈추지 않는 추억 같다. 그저 흘러가는 마음들을 모아 푸르게 간직하는 곳. 그곳이 바로 청산이다.
청산 나무의 대부분은 가을이 되어도 초록 잎을 떨구는 법이 없다. 그래서인가 켜켜이 먼지가 쌓인 것처럼 탁해 보일 때가 있다. 오해가 쌓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처럼 답답할 때가 있다. 김이듬 시인은 <십일월>이란 시에서 나무는 낙엽의 형식으로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질문한다. 그러면 사시사철 푸르기만 한 나무는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멀리 갈 수 있는가. 그건 허물이다. 청산의 나무는 낙엽 대신 허물을 벗는다. 허물은 누군가의 땔감이나 누군가의 꽃꽂이 소재를 위해 거처를 옮겨간다. 때론 땅으로 스미고 쪼개지면서 자신의 뿌리를 지킨다. 자신의 허물로 자신의 허물을 덮는 것, 마음을 바꾸지 못해 몸을 바꾸는 사랑처럼 시리도록 푸른 고백이다.
푸른 노래
카툼바를 뒤로하고 20여 분쯤 더 달리면 고풍스러운 마을 블랙히스에 닿는다. 이곳에서 옆길로 빠져 분지를 향해 내려가다 보면 메갈롱 벨리 숲이 현현한다. 이 숲에서 나는 청산이 연주하는 별곡을 마무리한다.
계곡물 소리가 첼로 음처럼 장중하게 들리고, 물 건너에서 쿠쿠바라 울음소리가 솔로 파트로 들려온다. 머리 위로 작은 새들의 재잘거림이 배경음으로 깔린다. 바람이 풀벌레를 흔들어 음계를 옮기면 숲은 소리의 풍경을 바꾼다. 나뭇잎을 타고 물소리가 밀려온다. 언젠가 동해 바닷가에서 한밤중에 듣던 바로 그 소리이다. 나는 종종 청산 숲속에 와서 파도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바다 건너에서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 당신의 안부이다. 같은 마음을 거머쥔 오래된 그리움 같은 것이다.
한 줄기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공터가 보인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없는 곳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반갑다. 나는 늘 사람을 피해 숲을 찾지만, 정작 내 오감을 깨우는 건 사람의 흔적일 때가 많다. 혼자서 옷깃은 여밀 수 있으나, 혼자서 등을 껴안지는 못하는 이치를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음만이 정도正度라 여기며 달려온 내 삶의 단조로운 곡들을 바라본다. 화성의 종류가 여러 갈래인 것을 알지 못하고 삶을 연주하던 아둔한 지휘자는 청산 숲에 와서야 비로소 귀와 입을 연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인생을 노래한다. 몸은 비록 시드니에 있지만 기필코 자기 방식으로 청산을 노래하는 숲속의 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