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빼기 나 그리고
이른 아침, 문을 나서는 내 목덜미에 서늘한 바람이 인사를 한다. 계절이 소리없이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다시 들어가 겉옷을 걸쳐야 하나…, 망설이다 좀더 빨리 걷기로 했다.
‘50을 넘기면서 부러운 것은 건강 유지’라는 지인들의 이야기가 가슴으로 다가온다. 젊어서는 그런 말을 해 주는 이도 없었거니와 설령 그렇더라도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전쟁을 치르듯 살다가 결국 병원 신세를 진 게 20여 년 전이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던 내가 허리 디스크로 병원 신세를 벗어나고자 혹독한 재활 과정을 거치며 ‘걷기’에 빠져들었다.
오랫만에 전화를 준 친구는 가까운 친구들의 이름을 얘기하며 뇌출혈과 심장마비, 암 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래? 상태는 괜찮은 거야?’라며 넘겼지만 늘 갖가지 병을 달고 살아 온 터여서 충격이 컸다. 그러고는 건강정보를 찾아보게 되었다.
‘유투브’ 게시물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알츠하이머 환자의 쾌유 사례를 담은 내용을 보았다.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가 심해진다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나았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아침에 걷기만 하면 된다는 맹목적인 방법이 어쩌면 문제일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심장 박동수에 따라 뇌로 혈류가 공급되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 약 3초 정도의 영상이 나의 게으름을 일깨웠다. 심장박동이 강할수록 건강한 피가 뇌로 간다는 간단한 이론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전문 지식을 담은 의학 드라마, 인터넷 게시물들을 통해 접하는 의학 정보는 기본적인 상식 수준을 높여놓았다.
동영상 속의 의사가 알츠하이머 환자의 증세 호전에 대해 설명하는 도중, 무심결에 듣게 된 220이란 숫자와 자신의 나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귀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대로 테이블 위의 종이에 적어 놓았다. 동영상이 끝난 뒤 메모를 보았다. 그런데, 이 수치로 표기된 건강 지표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약 10여간 동안 들어다보며 생각을 깨웠지만 이해했다고 여겼던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는 까맣게 지워져 있는 것이었다. 그 때 갑자기 ‘치매’라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동영상을 보다가 얼핏 들은 것을 무턱대고 적어 놓았던 게 발단이었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치매 환자의 삶이 어떻게 황폐해져 가는지를 가끔 보아왔던 탓일까. 어쩌면 내게도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고 치매에 대한 우려와 초조, 심지어 긴장감마저 엄습해 왔다. 서서히 모든 기억을 잃어가며 자신이 걸어온 과거의 시간을 녹여버리고, 끝내는 아무도 기억해 내지 못한 채 동물의 본능으로 죽어간다는 질병. 자신과 연관된 모든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막막함, 나에게 남은 삶도 그런 시간들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일까.
며칠을 우울하게 보냈다. 건망증은 ‘내게는 건망증이 있어’라는 것을 인식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 증상이 치매가 아닌 건망증이려면, 지금쯤은 그 숫자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야 했다. 거의 한 주가 지나도록 그 수치의 의미, 결과, 그것이 나오게 된 과정을 되짚어 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으니… 치매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프로그램을 찾아 다시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유투브에 접속해 뒤적였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봤던 그 영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서서히, 치매에 대한 불안감은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의사와 상담해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증상을 더디게 하는 약물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우선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초조감을 넘어서 공포가 시작되었고, 심지어 악몽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해 고객을 만나는 게 두렵고 전화가 오면 행여 잘못된 정보를 줄까 가슴이 떨렸다. 치매 증상 초기에 복용하는 약물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어쩔 수 없이 가정의에게 전화하기로 용기를 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수화기를 들었다. 모두가 사무실을 비운 시간에 통화를 하기로 했다. 암담한 심정으로 신호를 세었다. 정확히 4번째 신호에서 딸깍 하는 소리에 이어 굵은 바리톤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과 달리 눈물이 그치지 않아 우물거리며 상황을 설명했나 보다. 3번이나 되묻는 바람에 큰소리로 ‘치매에 걸렸다고요, 기억이 안 난다고!’라고 말해버렸다. 이어진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던 의사는 껄껄 웃었다. “그 정도면 치매가 아니예요. 이미 오늘 예약은 다찼으니 내일 아침 일찍, 7 시까지 병원으로 오세요.”
대수롭지 않는 듯한 의사의 말들, 심지어 내 절실함을 간단하게 넘겨버리는 그에게 못내 섭섭했다. 순간, 나도 고객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채 내 생각대로 해 온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제서야 고객들이 나의 냉정한 말투로 인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나를 찾아오는 그들을 좀더 헤아려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전화를 끊고나니 고백성사를 한 기분이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병원으로 갔다.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그의 진료실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그림과 종이들이 순서대로 놓여있었다. 나 하나 때문에 더 이른 시간에 나왔을 터임에도 의사는 힘든 내색 없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만들어 준 분위기 탓인지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엔 좀 잔 것 같다. 한참을 퍼즐 맞추듯 그림과 질문을 이어갔다. 잠시 후, 의사가 ‘전혀 치매 증상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검사를 위해 혈액을 뽑았다.
이틀 후 다시 방문한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 얼마간의 시간동안 나를 옮아맸던 불안감이 ‘근거 없음’이라는 판정이었다. 가슴 속으로 시원한 파도가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기억 하나가 머릿속에서 반짝하고 튀어올랐다.
‘220 빼기 내 나이 = 내가 운동으로 올려야 하는 순간 심장 박동수’. 메모까지 해 두고는 까맣게 잊고 있던 바로 그 숫자의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