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오줌발
대학 1학년 봄, 그러니까 캠퍼스에 벚꽃이나 목련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신입생을 위한 문학강연회가 열렸다. 그 소식을 듣고 나도 문학 청년티를 내고 싶어 참석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들렀다. 벽도 타일도 소변기도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한 중년 남자가 소리도 없이 들어오더니 내 옆에서 양복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눈동자를 벽에 고정한 채 오줌을 누었다. 이 삼 초 자지러진 뒤 몇 번 털어내고 지퍼를 올렸다. 머리는 개그맨 김병조의 배추머리를 닮았다. 나이는 사십이 넘어 보였고 오십은 안 돼 보였다. 시간강사는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중후한 정교수 느낌도 주지 않았다. 그냥 먹물 냄새만 조금 느껴졌다.
시간이 돼 강연장에 들어갔다. 저 멀리 강단 위에 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 내 옆에서 오줌 누던 남잔데…’ 소설가 최인훈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의 소설을 읽은 적도 없어 그가 한국문학계의 거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강연 내내 내가 알 수도 없는 이상한 말들만 쏟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형상화’ ‘의식화’ 뭐 이런 주제였던 것 같다. 글도 어렵게 쓰지만, 강연도 참 어렵게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그의 세로판 전집을 구해 한 권 한 권 읽어 나갔다. <구운몽>도 읽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 읽었다. 그 가운데서 대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는 당대의 명작, <광장>을 읽고 무척 혼란스러웠다. 주인공 명준은 왜 남지나(남중국)해에서 몸을 던져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국가나 공산국가 아니 그도 저도 싫었다면 제 3세계라도 택했으면 좋았을 텐데…. 깊고 푸른 남지나 바닷물에 몸을 던진 그를 생각하며 ‘이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첫 직장을 잡은 뒤 일 주일에 한 번은 과외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종로 2가 YMCA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8주간 사진을 공부했다. 여러 예술 가운데 내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라고 믿었다. 덕수궁을 돌며 흑백 사진을 찍었다. 지옥과 천국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암실에서 필름 인화하는 작업을 땀을 흘려가며 해냈다. 내가 고른 한 순간이 영원으로 남았다.
다음 코스는 문학강좌로 눈을 돌렸다. 장소는 서대문 인근 문학 관련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문학과 역사’ 뭐 이런 주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강사는 소설가 조정래. 그때가 아마 한창 <태백산맥>을 쓸 때라 믿어진다. 강사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그 강좌를 10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었다.
아마 강좌 첫날이었을 것이다. 안 만들 수가 없어 억지로 만든 것 같은 티가 물씬 풍기는 허름한 화장실 소변기 한 칸을 조정래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같이 볼일을 볼 용기가 안 나 오줌보를 틀어쥐고 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기다렸다. 작은 볼일을 마친 조정래가 뒤를 돌아보며 지퍼를 올렸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오줌 누기를 마친 소설가 선생님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찰나의 고민 때문이었다. 피해 가는 방법은 딱 하나. 그저 ‘씨익~’ 웃는 것이었다. 내가 어설픈 얼굴을 하며 웃자, 조정래도 텁텁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눈매가 날카로워 순간 섬뜩했다. 그런데도 그 사이 나는 조정래의 오줌 소리가 떠올랐다. 지리산 불일폭포의 물줄기 같은 거센 울음이었다.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최일남은 서울시청 옆 신문회관(?) 9층에 있는 커피숍 화장실에서 만났다. 동아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필력을 날렸던 그는 내가 좋아하는 기자(작가) 중 한 명이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기자로서 명 칼럼을 써냈기에 그의 글 실력을 닮고 싶었다. 훗날 한겨레신문에도 칼럼을 썼는데 그때마다 칼럼을 오려 스크랩을 해 놓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기자였는데도 정작 화장실 같은 밀폐된, 그리고 은밀한 공간에서 직접 얼굴을 대하니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대영산업의 김 부장이나, 동대문 구청의 민원계장 같은 이로만 보였을 뿐이다.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도 강남 대치동 한정식 식당 화장실에서 본 적이 있다. 내 후배 기자가 그를 인터뷰했을 때 얼굴이라도 볼까 해서 따라갔다. 시간상 나랑 따로 얘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들어오고 나가는 그 틈 사이에서 대작가 김승옥을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래서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자랑하기도 했다. “나, 김승옥 얼굴 본 사람이야”하고 말이다.
김훈도 보고 신경숙도 봤다. 그 밖에 그리 이름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유명한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봤고, 덜 유명한 사람들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봤다. 책 출판 사인회 행사장이거나, 도서전시회 또는 출판기념회 같은 곳이었다. 나대길 싫어하는 편이라 유명한 작가를 볼 기회가 있어도 일부러 고개를 돌려 오래 지켜보지 않는다. 내심 나 자신이 쪽팔려서 그렇다.
그렇지만 대작가들을 화장실에서, 그것도 작은 볼일을 보는 그들의 민살을 조금이라도 훔쳐 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작은 기쁨이었다. 난 그때 분명히 알았다. 남자들은, 제 아무리 유명한 소설가라도, 너나 할 것 없이 볼일을 보고 이 삼 초 자지러진 뒤, 비슷한 방법으로 털어낸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