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발화
너에게서는 늘 불 냄새가 나
찬 가슴 토하는 입김에서도 불꽃이 보이지
오페라하우스 날갯죽지가 익던 날
너는 바람에서 아기 캥거루의 불 냄새가 난다고 했어
내 코가 자꾸 네 몸의 열기를 더듬는데
서큘라 키* 전광판에 정말 불을 밀고 있는 캥거루가 나타났지
눈동자가 뜨거워지면 눈물이 흐르지 않아
바다 넘어 북쪽 골짜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여름을 삼키고 있었어
태양은 어쩌다 푸르디푸른 지구의 위대한 혈맥에다 화를 쏟은 걸까
바람의 온도를 함부로 만지는 게 아니었어
열대 과일이 칼슘카바이드에 빚을 질 때마다 바람의 당도가 빠져나간 거야
저혈당 사랑은 살갗에 잿빛 주름을 남기지
화마 품은 골짜기
소매 아래 숨어있던 너의 검은 물집을 그만 보고 말았어
어쩌다 이 도시는 너에게 돋보기를 들이대서 불꽃을 일으킨 걸까
손잡아 식혀주고 싶은데 닿는 곳마다 불 멍이 들어
너무 뜨거운 날은 손뼉도 거리가 필요한 게야
예감하면서 피하지 못한 불운과
검은 숨결이 부풀어 스스로 터진 풍선이
같은 질감의 불행이라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아챈 걸까
지난여름이 태양의 흑체를 복사하지 않았다면
오페라하우스 날갯죽지는 익지 않았을 거야
*시드니 대표적인 부두로 인근 항을 오가는 페리 선착장과 기차역이 있다. 오페라하우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 시작 노트
가족의 방화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살아가는 회사 동료가 있다. 산불로 시드니 하늘이 잿빛으로 차 있던 날, 긴소매 아래 산맥처럼 뻗어 있는 그녀의 화상 자국을 보았다. 산불도 화상도 어느 것 하나 우연일 수는 없다. 그날 나는 점점 붉어지는 하늘에 대고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다. 기후 문제이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문제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오늘 이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