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나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반려견이 식음을 전폐하더니 삼일 만에 내 곁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평범한 수요일 저녁, 내 몸이 고장났다. 마음 때문일까? 하루 일과를 끝내려는 설겆이 도중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서 있는 자세에서 손만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 숨쉬기가 왜 이리도 불편한지 비탈길을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물 묻은 손을 닦지도 못하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이 편안해지기를 기다리는데 한 시간여가 흘러도 차도가 없자 응급실로 실려갔다. 심전도 기계와 연결된 전극들이 몸 여러 곳에 붙여지고 동시에 응급조치로 아스피린 복용하고 혀 밑에 알약을 물었다. 한참 후 결국엔 몰핀을 넣은 링거 주사액까지 투여되면서 똑똑 떨어져 들어가는 한 방울씩의 힘일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강아지가 기운이 넘쳐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때쯤 그들의 간절한 바람으로 생후 8주된 하얀 털의 소형견 몰티즈를 새 식구로 맞았다. 배변 장소를 잘 길들이기 위해 칭찬과 함께 보상으로 작은 과자를 주었더니 용변 후 와서 알리는 것이 어느 새 버릇이 되었다. 하루의 시작은 이랬다. 밤새 참았던 소변을 보면 뒷처리 해달라고 화장실로 앞장 서 간다. 그리고는 바로 밥 주는 곳으로 가 빙글빙글 돌면서 기다린다. 아침을 다 먹고는 다시 신문지 위에서 변을 보고 이어서 나를 찾는다. 치워달라고 그리고 과자 달라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모두 마치고 독립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그는 성견이 되었을 때 몸무게가 2.6kg였다. 자그마한 체구로 부리는 재롱은 나의 갱년기와 빈둥지 증후군의 허전함까지 달래 주었기에 외출 하면 늘 조바심 내며 서둘러 귀가할 밖에. 특히 반짝반짝 촉촉한 두 눈으로 애원하며 놀아달라고 귀찮게 하던 때가 그리워지기 시작하면서 한시라도 더 같이 지내려 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꼬리를 흔들며 14년 반이 넘는 세월 동안 반갑게 맞아주더니 마지막 한 달은 늙은 행세를 톡톡히 했다. 장난치거나 뛰거나 하는 어떤 행동도 없이 잠만 자려 들었다. 또 소리를 잘 못 듣는지 아니면 몸이 말을 안 들어서인지 도무지 반응이 없다. 그리고 아무데나 소변을 보는데 양도 적고 오줌색이 아니라 맑은 물의 색이다. 뒷마당에 데리고 나가도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한다.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았건만 이제 방향 감각을 잃고 벽 앞에서 걷기를 멈춘다. 한 번에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 아침에 깨서 방을 나가겠다고 표시하는데 짖지는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노화되는 모습에 내가 무너진다.
비몽사몽 부산스런 움직임에 살짝 눈을 떠보니 아직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첫 번 피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으나 원인을 찾기 위해 한 번 더 주사 바늘을 찌르겠다고 말하는 간호사가 옆에 서 있다. 미소로 겨우 답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서서히 나의 호흡은 안정을 찾아가고 강아지가 삶을 잘 마무리 하려 애쓰며 내게 하려던 말이 이제야 들린다.
“엄마! 먹고 마시고 용변 볼 때 외에는 움직이지 않다보니 기운이 점점 없어졌어요. 의욕 없이 지내는 그 조용한 시간도 외면하지 않으셨지요. 특히 마지막 삼 일은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함께 해 주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새벽부터 있는 힘을 다 끌어 모아 힘들게 앉았어요.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사랑합니다’라는 뜻인 것 아시지요? 크게 뜬 두 눈을 보자 깜짝 놀라 회춘했냐며 활짝 기뻐하셨지요. 제가 낑낑대니 소변 보려나 타올 위에 놓였어요. 서 있기 불편할까 그렇게 해 주었는데 이번엔 효도하고 싶어 굳이 미끄러져가며 신문지 위로 겨우 올라가 했지요. 오랫만에 쉬를 치워본다며 저를 자랑스럽다했어요. 그 다음 날도 두 눈을 또랑또랑 뜨고 기다렸어요. 밤새 안녕히 주무셨는지 마지막 아침 인사를 나누려구요. 물론 입을 꼭 다물며 마시기까지도 거부했지만 소변은 한 번 더 할 수 있어 신문지 위를 찾았지요. 먹지도 않는 저를 안고 머리에 뽀뽀 해주니 있는 힘을 다해 고개 들어 ‘저도 사랑해요’라는 뜻으로 얼굴을 핥았지요. 예전 같으면 쉽게 할 수 있었는데 한 번만 겨우 했어요. 그 날 저녁 제 집에서 나와 소리나는 쪽으로 가까스로 몸을 옮겨 앉았지요. 그것을 눈치 챈 엄마는 저를 들어 배 위에 올려놓고 같은 템포로 숨쉬기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지요. 이러다 몸이 굳으면 어쩌지 싶었는데 마침 저를 옆자리로 옮겨 주었어요. 잠 못 이루는 엄마는 밤새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덕분에 그 긴긴 밤을 새근새근 잘도 잤어요. 새벽녘에 엄마의 손길 속에서 저는 숨쉬기를 멈췄습니다.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죽는 것이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깨끗이 닦이고 포근한 타올에 감싸여 예쁜 상자 속에 뉘였지요. 부엌에서 제일 잘 보이는 뒷마당 언덕으로 집을 옮긴 셈이지요. 마침 새로 심겨진 키작은 꽃들은 저를 닮았네요. 그러니 그만 힘들어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세요.”
그 사이 벌써 두 번째 피검사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고 어느덧 호흡이 제자리를 찾으니 간호사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몸에 십 수개를 붙여놓았던 것들을 떼어내고 담당 의사는 일단 퇴원을 허락했다. 더 자세한 검사는 내일부터 통원으로 하라며. 하지만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내가 꼭 닮고 싶은 그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이별의 슬픔을 말끔히 씻어 주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하다만 설겆이를 끝냈다. 그리고 고개 들어 창 밖을 보니 어느 새 만발한 진분홍색 패랭이꽃들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차수희 / 수필가, 시드니 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