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좀 내어주실래요?
새가 발을 물었다. 머리를 쪼인 것도 아니고 발을 물렸다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다. 어쨌든 나의 느낌은 확실히 물렸다고 느꼈다. 그 새는 다리가 거미처럼 양쪽으로 여러 개가 있었는데 내 발바닥을 여러 쌍의 다리로 감싸안 듯 안고 물었다. 아무리 떼려고 애를 써도 발등 쪽으로 깍지를 끼운 듯 잡고 있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새는 떼를 쓰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떼어버리려고 발을 털고 난리를 떨었다.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30분이었다. 나는 기이한 꿈의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메모를 하고 싶었으나 잠이 달아날까 두려워 그냥 잤다.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새한테 물린 거 기억하라고….
장마도 아닌데 한 달 넘게 내리는 가을비 때문에 몸도 마음도 무거운 돌처럼 내려 앉아있었다. 비가 오는 날은 영락없이 외로운 섬에 유배된 신세가 된다. 미끄러운 길바닥과 나의 신체의 한 부분인 목발은 숙적관계이기 때문이다. 넘어져서 뼈를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생 당한 부상을 늘어놓자면 발목, 발등, 무릎, 꼬리뼈, 갈비, 어깨탈골 등 전신에 걸쳐 고르게 다쳤다. 같은 곳을 두 번 다치지는 않았다. 이번 비에는 몸을 사리려 꼬박 한 달을 갇혀 살았다. 오늘은 아침에 어둑하던 날씨가 선심 쓰듯 느닷없이 화창해졌다. 해가 보이자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반찬거리를 사러 나가고 싶었다. 시금치, 콩나물, 고등어를 사자. 점점 쇠퇴해져 가는 기억력의 나사를 조이려 주문처럼 서너 차례 중얼거렸다. 밀린 숙제를 하듯 나간 길에 장도 보고, 은행도 들리고, 약국도 들리고, 옷가게도 들렀다. 운동량이 부족한 나는 볼일이 끝나자 옷가게 두어 군데를 돌며 눈에 드는 것들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에너지를 소진했다. 적당한 땀이 나자 짐(gym) 사용료를 지불하는 심정으로 옷가지 하나를 사들고 왔다. 그렇게 사들여서 햇볕을 보지 못한 옷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나의 건강을 위한 나만의 운동법에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마침 한적한 주택가였기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시드니 한인성당 구역장의 전화였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그녀는 내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사람 좋은 그이가 무리한 부탁은 만무일 것이 확실하여 얼마든지 하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 구역 세족례 대상자로 내가 선정이 되었으니 허락해달라고 했다. 때는 줄곧 비 내리는 사순절을 보내며 성삼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통상 성 목요일 발씻김 대상의 기준은 병들거나 가난하거나 소외된 자를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나는 단번에 구차한 마음없이 소외된 자의 그룹에 나를 세웠다. 나는 최근 사순시기를 보내며 회색빛의 채도에 참회의 의미를 두고 차라리 감사하고 있었다. 속죄의 시기니만큼 세속적 즐거움이 어렵지 않게 절제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방황, 모세의 40일 단식, 엘리야의 40일 단식, 예수의 40일 단식과 맞물리는 숫자의 나날을, 바닥을 치는 우울로 보내고 있었다. 세례받은 지 30년 된 가톨릭 신자인 나의 신심은 깊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십계명 중의 하나인 주일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발바닥 신자의 발씻김 예식 제안에는 저으기 당황스러웠다. 발을 내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확답을 주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성급하게 신을 벗고 내발이 어떻게 생겼나 들여다보았다. 맨발이었던 나는 쉽게 발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이렇게 작고 못생겼었나? 내발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평생토록 한 번도 관심 있게 발을 본 적이 없었다. 매니큐어는 할망정 패디큐어는 해본 적이 없다. 발은 양말로, 신발로 감추어져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미천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나는 나의 발을 스스로 신체에서 소외시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과 사랑을 드러내셨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손길을 느끼고 나의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그러자 작고 못생긴 발이 측은해 보이며 내 몸의 한 부분이 아닌 그리스도의 지체로 보였다. 순간 그 발을 영광에 닿게 하고 싶었다. 나는 구역장에게 기쁨 충만한 승락의 전화를 했다. 시금치, 콩나물, 고등어를 팽개쳐 놓고 남의 발을 훔쳐보듯 수시로 나의 발을 들여다 보았다. 비로소 발을 쓰다듬으며 평생 외면하던 애물을 단장하고 싶었다. 최후의 만찬 밤에 하늘을 수놓던 은하수의 은물결을 발톱에 옮겨 담고 싶었다. 이천년 전의 달과 별을 따기 위해 맨발로 세월을 거슬러 새를 타고 날아가리라. 그날의 영광을 기억하는 밤하늘의 증인을 내발에 묻혀 오리라. 낮아지기 위해서 용기 있는 전진을, 높아지기 위해서 아름다운 후퇴를 할 수 있는 지혜의 발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 네일 아트를 예약했다.
발을 씻고 맞이하는 이번 부활절에는 넘어질까 두려워, 상처받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골방에 가두던 소외를 구원받고 이타적 섬김과 사랑의 실천을 향한 애긍을 간청하리라.
오늘 구역장의 부탁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스러운 프로포즈가 되었다.
“발좀 내어 주실래요?” 간밤의 그 새는 하느님의 전령 비둘기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