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방 창문너머로 보이는 곳에 정원사가 열심으로 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삐죽 삐죽한 모습으로 자란 나무를 가지런하게 다듬는 손길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재빠르게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손동작이 인간의 동작이라기보다 기계에 가까운 손놀림이다. 가지런히 정돈된 나무의 모양새가 밤톨처럼 매끄러워 보인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길도 흐뭇한 미소가 번지리라.
나는 나이가 들면서부터 미용실을 자주 가게 되었다. 내 스스로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생머리를 하고 있으면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한 머리를 드라이어로 손을 보거나 한다. 다행이도 우리집 가까운 거리에 K라는 미용실이 있다. 우연찮게도 나는 차례를 기다리다 남자 미용사에게 머리를 손질하게 되었다. 40을 조금 넘은 듯한 까칠한 모습에 섬세하지 못하고 거칠 거라는 내 선입견과는 다르게 머리를 만지는 손길에서 능숙한 그의 프로 솜씨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한 올 한 올 머리를 들추어 가며 싹뚝싹뚝 가위질 소리에서 나는 초등학교 때 내 머리를 잘라 주시던 아버지의 가위질 소리와 만나곤 한다.
“얘야, 머리를 한번 흔들어 보렴”.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손에는 가위를, 왼손에는 빗을 든 아버지가 내 앞머리를 가지런히 빗기고는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가위가 어찌나 잘 들든지 조바심을 내며 마당의 한 귀퉁이에 서서 아버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옆머리를 자를 때는 행여 내 귀가 다칠까봐 노심초사하며 머리 자르는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리저리 머리가 잘 깎였는지 관찰하고 계셨다. “얘야, 머리를 다시 한 번 흔들어 보렴”. 나는 다시 도리질을 하며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오올치.” 다시 내 앞머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아버지 가위질에서는 하얀 눈을 밟을 때와 같은 소리가 났다. 다시 빗질을 하는 아버지의 눈은 너무나 진지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눈을 맞추기가 쑥스러워 눈을 내리깔고 내 콧등만 바라다본다. 아홉 살의 나는 이내 지루함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지루한 일을 자청하실까? 내 머리를 다 자르고도 이웃집 영희와 옥희, 금순이 머리까지 자르고 계신 아버지 어깨너머로 어느새 석양이 드리우고 있다. 아버지는 머리 자르기에 신명이 나시는 것일까? 온 동네 아이들 머리를 자르려면 팔도 아프실 텐데…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늘 봉사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으시고 동네의 반장 일을 도맡아 하셨다.
최근에는 코비드로 인해 거의 6개월을 ‘집콕’으로 지내다보니 내 짧은 머리가 길어 질끈 묶어보니 마치 포니 테일 머리가 되었다. 얼씨구나,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게 아닌가. 머리를 깡총하게 묶어서 마스크를 쓴 채 사방팔방으로 신나게 돌아다녔지만 머리 뒤쪽에 무언가 붙어있는 묵직한 느낌은 매번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코비드 백신을 두 번 맞기 무섭게 K미용실에 예약을 해놓았다. 그는 새 장소에 미용실을 오픈하여 손님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해놓고 있었다. 거의 20여 년에 걸쳐 내 머리 손질을 꼼꼼하게 해주는 그에게 어떤 선물로 그를 기쁘게 할까? 어떤 선물보다도 그가 할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 줘야지. 새벽 일찍 일어나 정성을 들여 잡채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면을 넉넉하게 넣고 버섯과 야채를 듬뿍 넣어 만든 잡채를 건네주니 그의 기뻐하는 모습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표정이다. 그 어느 선물보다도 가장 값진 선물이라며 감사히 받는다. 빠른 손놀림으로 머리를 손질해주는 그의 자상함에 또 다시 아버지의 손길이 감지된다. 벌써 60여년이 지난 세월이 아닌가.
그때도 아버지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얘야, 네 머리카락은 반짝 반짝 윤이 나는구나. 음식을 골고루 먹으니 머리카락까지도 양귀비처럼 빛이 나네”.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 아버지 앞에만 서면 쑥스럽기도 했지만 무언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초등학교 때 학교를 파하고 오면 늘상 아버지는 공부한 걸 체크하시며 백점을 받아오는 날에는 “세상에서 우리 딸이 최고다”라며 엄지 손가락을 높이 올리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K미용실의 그와 내 아버지의 섬세함은 묘하게도 닮은 구석이 있다. 두 남자의 머리 손질하는 부드러운 마음까지도 내게 스며드는 듯하다.
이렇듯 애지중지 나를 키워 주신 부모님은 이제 이승에서 뵈올 길이 없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내 머리를 깎아주시던 당시의 아버지보다 훌쩍 넘은 나이에 와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나는 언제나 털을 깎이는 양처럼 다소곳이 당신 앞에 고개 숙인 아홉 살의 내 모습으로 서 있곤 한다. 그리움에도 나이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즈음 들어 아버지가 부쩍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