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자고 일어나면 모임이 있었던 것 같다. 동창 모임, 남편과 동반하는 모임,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후 생긴 자모회… 겨를이 없다는 이유로 그 모임들과 담을 쌓는다면 사회성이 모자라는 까칠한 여자로 낙인 찍힐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한 학기에 한 번씩 자율 수업의 날을 시행하고 있었다. 급우들끼리 팀을 만들어 지역 문화재, 생태 공원, 수질 관련 탐사 보고서 등을 함께 만들었다. 요즘이야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끄집어낼 수 있지만, 그때는 달랐다. 마당발인 학부모가 이끄는 모임이란 나 같은 새내기 엄마에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주 나다니면 복이 나간다’는 샤머니즘적인 이유로 내가 외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금쪽같은 손주들을 위해 귀동냥하러 나간다는 것은 그럴듯한 구실이 되었다. ‘어머니 모임’은 자식들이 연줄이 되어 정보를 공유하며 아이들을 반듯하게 잘 키워보자는 좋은 취지로 자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학교는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주변에 있는 맛집 순례라도 하듯 이 식당 저 레스토랑을 찾아 다녔다. 모임은 코스 요리처럼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서로 마이크를 잡으려 했다. 노래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모태 음치이다. 모두 다 가수이니 노래 못하는 사람이 더 매력 있다며 꼬드겨 노래를 시키고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때로는 흥이 무르익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이 노래방의 집요한 조명과 난장판에서 호객하는 것처럼 흔들어대는 탬버린 소리, 큰 시상이나 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쏟아지는 점수에 감정이 널뛰는 곳을 에둘러 돌아섰다.
호주에서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은 남녀가 섞여 앉아 서로 잘 아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네 동부인 모임은 흔히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앉아 자신들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앞에 놓인 음식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어느 골프장이 어떻다’라느니 ‘몇 번 홀에서 버디 잡을 찬스를 아깝게 놓쳤다’라며 골프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가면 골프를 치지 않는 나는 물에 기름처럼 겉돌았다. 골프를 치는 여자들은 예쁘게 그을린 다리 근육과 반짝거리는 ‘생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필드에 공을 치러가는 것을 운동 이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남편이 골프를 잘 치는 것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인들은 나이 들어 주말 과부 되지 않으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 한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선뜻 잡지 못했다. 운동 신경이 굼뜬 이유도 있지만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운동한답시고 교외로 장시간 나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같이 골프를 치고 싶었는지 여자들에게 인기 있던 M골프채를 사들고 왔다. 코치가 몸이 유연해서 회전을 잘한다고 칭찬하길래 열심히 연습했다. 이왕 시작한 것 남보란 듯 잘 치고 싶었다. 허리가 아픈지 갈비뼈가 아픈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처음 배울 때는 아플 수도 있다며 꾹 참고 연습을 계속해야 실력이 붙는다고 주위에서 다독거리니 쉴 수도 없었다.
자갈치에서 제사 장을 보고 차에서 내리는데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와서 누웠다. 간첩 침쟁이, 대학 야구팀 전속 카이로프랙터, 쇼핑하듯 유명하다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MRI 결과를 본 Y병원 과장인 친구 남편은 요추 4번과 5번이 붙은 척추 협착증이 심하니 골프 같은 운동은 피하라는 반가운 조언을 했다. 등 떠밀려 클럽을 들었다가 미련 없이 골프채를 내려놓았다.
배차 시간이 긴 시드니의 대중교통을 기다리느니 걷고 또 걸었다. 불편한 대중교통이 아픈 허리를 펴고 활보하게 했다. 남편은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 어울리는 잔재미가 없어서인지 오분 거리에 골프장을 두고도 한국에서처럼 열심을 내지 않는다.
나는 모임에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될까봐 안 되는 노래지만 단 한 곡이라도 제대로 부르고 싶어 소리 소문 없이 노래 교실을 다니기도 했었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 안달을 한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사흘도 못 되어 흥미를 잃어버릴 장난감을 갖기 위해 떼를 쓴 것 같다. 호주가 달리 천국이 아니라 노래방 가지 않아도 되고 골프를 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 싶었다.
공간만 이동했는데 노래방 안가고 골프 치지 않아도 되는 소원은 이루어졌다. 쉽게 소원은 이루어졌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 한편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커진다. 수류탄이나 되는 것처럼 멀리하고 싶었던 마이크가 세월의 더께에 움츠러든 내 가슴을 활짝 펴게 한 산소통처럼 느껴진다. 음악은, 특히 노래 부르기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노래 실기 시험 때 실수로 가사를 틀리게 부르자 ‘그만, 들어가’라는 선생님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노래와 멀어졌다. 나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려 친구들은 자꾸 마이크를 내밀었지. 골프채를 잡게 하려고 듣기 좋은 말로 토닥거렸던 지인들은 삼시세끼 시어머니 당뇨병 식단에 묶인 나에게 한나절이나마 작은 공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어릴 때 읽은 동화책에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가 있다. 배가 고팠던 할머니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맛있는 소시지가 나왔으면 했다. 소시지 같은 하찮은 것을 구한 것에 화가 난 할아버지는 ‘그놈의 소시지 할망구 코에나 붙어라’고 소리쳤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소원으로 할머니 코에 붙은 소시지를 떼면서 세 가지 소원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림 속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노래방으로 골프 연습장으로 나를 이끈 손길들이 그립다. 젊었을 때 남편은 나에게 노래마저 잘하면 안 된다고 했다. 모든 것이 장점으로 보였던 홍안에 참호가 늘어나니 기타 치는 남편 옆에서 또박또박 박자 맞추어 흥을 돋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일이 없는 수요일이면 혼자 라운딩하는 남편에게 경기 진행에 방해를 주지 않는 편안한 골프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동화 속 할머니처럼 섣불리 소원을 빌어 놓고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세 번째 소원을 비는 모습이 어느덧 내 모습이 되어 있다.
송조안 /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