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차 향기와 따듯한 마음 글씨가 어우러진 다도와 캘리그라피 행사에 많은 이들이 모여 한국 차 예법 시연과 손 글씨 작품을 감상했다.
지난 12일(토) 오후 한국전통문화협회(KATACA)는 시드니 이스트우드 K 문화센터에서 ‘향기로운 차와 따듯한 캘리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다도와 캘리그라피 전시 체험 행사를 열었다.
세계 기독교 차문화 협회 호주 지부 예향원(대표 강성옥)이 마련한 다도 행사에는 여러 종류의 다기, 전통차, 한식 후식이 정갈하고 단아한 자태로 전시됐다. 모인 사람들은 전통차, 레몬과 자몽 주스, 한식 견과와 과자 따위를 맛보고 살 수 있었다. 깊은 차 향기와 고소한 한과 냄새가 한데 섞여 독특한 한국 분위기를 자아냈다.
행사장 가운데 끝 쪽에 병풍을 치고 돗자리를 깔아 한복을 입은 강 대표가 ‘차와 기도’라는 주제로 말차(末茶) 다례를 시연했다. 말차는 그늘에서 재배한 녹찻잎을 찌고 갈아서 가루로 만든 것이다.
강 대표가 우아하고 꼿꼿하게 다례를 시연하는 동안 해설자는 마이크를 들고 저마다 움직임에 담긴 기독교 복음을 풀이했다.
“찻사발 주머니에 있는 청색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나타내고 홍색은 예수님의 보혈, 죄사함, 그리고 구원을 의미합니다”
“물을 퇴수기에 버리고 찻사발 중앙을 지긋이 닦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가시 같은 죄를 깨끗이 풀어내고 씻어내는 의미입니다”
“찻사발의 차를 곱게 푸는데 40번 정도 앞뒤로 격불하여 거품이 곱게 일어나도록 합니다… 이것은 고운 소제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듯이 우리 자신도 말차처럼 고운 가루로 빻고 주의 보혈로 녹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해설자는 강 대표가 시연한 ‘차와 기도’는 일반 다례와 달리 하나님과 조용한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감사 기도를 드리는 기독교 행다례라고 설명했다.
애쉬필드 한인 장로교회(김종열 담임목사) 사모이기도 한 강 대표는 다도 시연을 마친 뒤 “말차 시음은 혼자서 차를 마시면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세계 복음화를 선포하는 감격스러운 예식”이라면서 “특히 차 가루를 유화하기 위해 흔드는 격불 과정에서 마음에 있는 나쁜 것들이 깨끗해지는 체험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차는 불교 문화 전통이 강하지만 차 나무도 애초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고 이를 기독교 행다례로 바꾸었다”면서 “어린이들도 어릴 때부터 다례를 배우면 차분하고 공손한 자세를 갖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 중에는 다도를 배운 한인 어린이 세 명이 참석한 어른들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는 순서도 있었다. 어른들이 자리에 앉자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들어와 맞은 편에서 정중하게 서로 절하며 다례에 따라 차를 마셨다.
아이들과 함께 다도 행사를 찾았다가 한인 어린이에게 차 한 잔을 받아 마신 홍콩계 호주인 이민자 하나 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차 대접을 받는 동안 내 가치가 높아지고 진정으로 존중받는다는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중국차에 비해 순한 맛을 가진 한국차를 앞으로 더 맛보고 싶다”고 말했다.
예향원은 이날 행사 판매 수익금 일부를 라오스 매콩강 수재의연금으로 보내다고 밝혔다.
다도 시연과 함께 옆방에서는 김양훈 작가와 그의 제자 김문희, 변율리, 제시카 박이 쓴 캘리그라피 작품을 전시했다. 들어가는 벽과 입구는 물론 전시관 안은 온통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글과 그림, 꽃으로 가득했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당신 꽃길만 걸으세요”
“술 끊어야겠다. 술이 눈물로 나와 짜증나게”
“꽃 향기로 하루를 시작해요”
“꽃은 피어야 아름답고, 바람은 불어야 시원하고, 인생은 즐겨야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한송이 꽃이 되기를 바라는 열망을 머금은 캘리그라피 작품이 만발한 공간이었다.
김양훈 작가는 그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원하는 글을 캘리그라피 작품으로 써주었다. 밝고 커다란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 마음 속 깊이 얽혀 있는 소망과 염원들을 힘차게 살아 있는 글씨체로 표현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분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글을 써주는 순간 순간이 재미있고 행복하다”면서 “’알콩달콩 행복하지 살자’ 같은 좋은 문구를 써서 냉장고 앞에 붙여 놓고 날마다 가족들이 보면 그게 머리와 가슴 속에 새겨져 정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수강생이 40-50명 되는데 오늘은 세 분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면서 “나이가 많은 분들인데도 노력과 열정과 아이디어로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함께 전시회를 열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날 캘리그라피 전시회를 둘러본 백인 남성 라이스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는데 장모님이 캘리그라피를 하셔서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지금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캘리그라피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좋아하는 한국문화가 없냐는 질문에 “김치찌개 같은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캘리그라피 전시관 가운데는 ‘힘내시게 친구’, ‘오직 예수’, ‘가슴 뛰는 삶’, ‘덕분입니다’ 와 같은 아름다운 꽃말이 활짝 피어 있는 글 나무가 한 그루 세워져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이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뿌리가 되는 말을 적은 캘리그라피 작품이 놓여 있었다.
‘입술에만 피는 아름다운 꽃,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이날 행사 주제 중 하나는 ‘글과 그림 그리고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치유하다’이다.
정동철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