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수년 전 재미있는 체험을 한 적이 있다. 낡고 두꺼운 책 속에서 별안간 자라의 머리가 밖으로 나오는 꿈을 꾼 것이다. 잠에서 깬 후 그 장면이 눈에 선하고 좀처럼 잊혀지지 않기에 꿈 풀이를 한다는 이런 저런 웹사이트를 뒤져 보았더니 마침 그럴싸한 해몽을 내놓은 곳이 있었다. 자라는 본래 신묘한 영물이고 낡은 책은 오래된 책을 의미하는지라 아마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치가 뛰어난 고서를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필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책 한 권을 선물 받게 되었다. 이 곳 시드니에서는 구할 수 없는, 금전적 가치를 떠나 필자처럼 활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 권쯤 소장하고 있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책을 주신 분은 성직에 몸담고 있었는데 본인도 그 책을 십여 년 전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으나 자신은 그 책을 공부하거나 사용할 일이 없어 필요한 누군가에게 꼭 주고 싶었노라 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보니 하도 신기해서, ‘과연 세상만사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가 봅니다’, 하고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위대한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은 무의식이 지배한다’고 했다. 그가 쓴 ‘꿈의 해석’이 고전으로 꼽히게 된 이유는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인간의 정신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시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의식 또는 이성이 인간 정신의 중심이 된다고 보았다면 프로이트는 무의식이야말로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 요소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제자 칼 융과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 등이 꿈에 대해 체계적인 정의를 내리고자 시도했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충족되지 못한 문제나 소망을 꿈속에서 이루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미래와는 상관없이 지난날을 회상하거나 마음속에 내재된 욕망을 일깨워 주고 또 그 욕망을 꿈속에서 충족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나름대로 매우 합리적이다. 어렸을 때 엄마와 같이 시장에 갔다가 맘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오히려 야단만 실컷 맞고 집으로 끌려온 후 그날 밤 그 물건을 갖게 되는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낮 시간 동안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무의식 속에서 발현되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학창 시절 시험을 보며 심각하게 좌절감을 느낀 사람은 더 이상 학교에 다니거나 시험을 볼 일이 없는데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마다 시험 보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깰 때까지 그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꿈은 수면을 연장하는 역할도 한다. 가령 수면 중에 요의를 느끼면 꿈속에서 화장실에 가 소변을 보거나, 또는 소변을 보러 화장실을 찾지만 어쩐지 일을 보기에 적절하지 않아 계속 다른 화장실을 찾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서 당장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반대로 꿈은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된 간절한 소망을 드러내기도 하므로 직장인이 상사에게 칭찬 받는 꿈을 꾼다면 그것은 꿈을 꾼 당사자가 그러한 상황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간단한 해석은 꿈의 실체를 규명하려고 애쓴 일부 서양의 심리학자들의 생각이며 이로써 꿈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단 성인들뿐 아니라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사고의 틀이 형성되는 시기가 되면 꿈의 내용이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흔한 죽음이나 공포에 직면하는 꿈은 사실상 현실과 거리가 멀고 욕구나 소망 충족과도 별로 관계가 없다. 아마 꿈의 예지적 의미를 이론적으로 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고 꿈의 상징성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학자들이, 자신들이 아는 범위 내에서만 꿈을 정의한 채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위에서 소개한대로 아주 단순한 정의를 내리는데 그치고 말았던 것 같다.
꿈에 조상이나 신령한 물건을 보고 복권에 당첨되거나 대통령과 같은 유명인사와 악수를 한 후 지위가 높아지고 금전적으로도 잘 풀리게 되었다는 말들을 심심찮게 듣는다. 이런 케이스를 보면 꿈이 단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보기엔 매우 한계가 있다. 다만 오랜 세월 역술업에 종사한 필자의 의견을 보탠다면, 운이 좋은 시기엔 꿈의 내용도 양호한 반면 불운하고 건강도 나빠지는 시기엔 악몽도 빈번해진다는 많은 환자들의 경험을 종합해 볼 때,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며 매 순간 거대한 현상계의 변화를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태련 /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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