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살(羊刃煞)
전문직에 종사할 운명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 진로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들의 태반이 전문직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는 화려한 전문 직종으로의 진출이, 흙수저들이 출세할 유일한 기회라는 과거로부터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반드시 세속적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명 ‘사’자돌림의 직업은 재물과 권력으로 가는 가장 용이한 길이라는 믿음이 이 시대의 상식이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길을 갈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천직’이라는 것이 있듯이 전문직도 처음부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죽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프로의 정신성과 능력은 태초부터 찬란하게 빛나는 훈장처럼, 때로는 피의 십자가처럼 한 사람의 운명에 아로새겨진 하나의 ‘업식’이다.
요즘은 전문직의 개념도 꽤나 방대해져서 IT, 금융, 언론, 교육, 문화,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현대의 프로들은 단지 자기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통해 벌어들인 밑천으로 재테크도 잘하고 공권력에도 곧잘 실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프로’란 일종의 장인정신을 가진 ‘마스터’의 의미가 강하다. 이들은 명리학에서 말하는 ‘양인살’의 소유자들로서, 각종 사극이나 대하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최후엔 인간승리의 열매를 전 인류와 공유한다. 맹자의 <고자장>(告子章)에서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고 했듯이, 대체로 중, 말년의 시기에 이른 양인들은 엄청난 내공과 경험을 갖춘 베테랑들이다.
그렇다면 양인살이란 무엇일까? 한문으로 풀어보면 양 羊, 칼날 刃, 죽일 煞이다. 즉 양의 목을 베어내는 칼날과 같은 살기를 뜻한다. 왜 구태여 양을 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잘 벼린 칼로 축제에 쓸 어린 양의 목을 베어내는 중동 남성들이 연상된다. 힘이 최정점에 이른 순간이다. 강렬한 고집과 야성과 카리스마가 번뜩인다. 대체로 사주에 자오묘유(子午卯酉)의 글자들이 많을수록 양인의 기운이 있다고 보는데, 큰 칼을 옆에 찬 장군의 형상이라 양인살이 있으면 대개 기세가 등등하고 지배 욕구가 막강하다. 길하게 작용할 경우, 힘든 상황을 잘 견디고 집요하게 노력하여 전문가가 된다. 양인은 총이나 칼과도 같아서 잘만 사용하면 나라를 구한다고도 했다. 종종 군인이나 경찰, 의사 등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고 법조계로 진출할 경우 그들의 말 한마디가 죄인의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한다. 때로는 보기 드문 불세출의 열사나 열녀가 나오기도 하는데, 춘향이나 논개 같은 여성들은 아마 사주에 분명 양인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양인살을 ‘프로의 별’이라고 했다. 사주에 양인살이 있으면 어떤 분야든 최고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강한 인내심과 불굴의 집념으로 끝장을 보는 성미라 스포츠를 하면 최고의 선수가 되고 기술을 배우면 업계 최고의 기술자가 된다. 하다못해 도둑질을 해도 좀도둑이 아니라 신창원처럼 이름을 떨치는 대도가 된다. 그만큼 타고난 힘이 강한 것이다. 가끔 양인의 기질이 지나치면 일종의 부작용이 따르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주관이 너무 뚜렷하여 사사건건 시비다툼이나 재앙을 부른다. 주변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므로 흥망성쇠의 기복이 남들에 비해 유별난 것이다. 이처럼 길흉의 양면이 극명한 탓에 양인의 삶엔 늘 모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극도의 수양과 자중이다. 매우 드물긴 해도 양인이면서도 겸손하게 처신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대화를 해 보면 이들이 수십 년에 걸쳐 얼마나 혹독한 극기의 과정을 거쳤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사람이 타고난 성정을 극복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던가?
하여 요즘처럼 직업의 종류가 방대해진 시대엔 이 양인살을 좋은 방향으로 잘 살리면 얼마든지 재능을 발휘해 프로가 될 수 있다.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한다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살성이니 양인은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고 초지일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당장 돈이 안 된다고, 우선 생계가 팍팍하다고 낙담할 것 없다. 예전의 프로들이 어떻게 살았던가? 당장 허준만 보더라도 그의 전 생애는 고통의 가시밭길이었다. 부귀영화와는 털끝만큼의 인연도 없었지만 의원으로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하물며 오늘날의 프로들은 이들처럼 살지도 않는다. 사주에 양인이 없어서 프로가 되지 못한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그저 프로로서 입신한다는 것은 맹자의 말씀대로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면 될 일이다.
김태련 /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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