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다자(比劫多者)의 생애
미국의 대선이 있기 전, 필자는 가끔 클린턴과 트럼프라는 두 대선 후보의 사주를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두 사람의 사주가 볼수록 알쏭달쏭한 것이 우위를 가리기도 애매했지만 대세가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의 언론은 대부분 민주당을 옹호하고 있었고 정치적 경력이나 인지도 면에서 클린턴이 압도적이었던 탓에, 필자 역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차라리 대선 후보들의 사주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오히려 무심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인터넷엔 이미 클린턴이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역술가들의 주장과 축하 메시지가 연일 넘쳐났다. 그러나 제왕은 본시 하늘이 내는 법, 상자를 열어보기 전엔 결코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도 고민스러웠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클린턴이 대통령 감이지만 21세기의 트렌드는 예전의 상투적인 공식을 벗어난 지 오래다. 변화와 다양성의 시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국에서는 이미 흑인 대통령이, 그리고 한국에선 여성 대통령이 배출되었기에 사업가인 트럼프가 노련한 관료인 클린턴에게 맞서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또한 그런 편이 오히려 요즘의 추세에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는지라 어느 후보가 정답일지는 선출자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두 후보의 사주를 보는 것이다. 그들이 태어난 시를 알 수 없고, 또한 제왕의 사주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명리학의 벽에도 불구하고 필자 입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 사주 간명이다. 이럴 때면 우주의 비밀을 홀로 만끽한다는 희열이 느껴진다. 하! 하!
두 후보의 사주엔 서로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클린턴은 귀격이다. 척 보아도 소싯적에 공부 열심히 해서 중장년에 말로 풀어먹는 인생이다. 애초에 변호사로 풀릴 귀한 팔자였던 게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최고의 수재형으로, 공부 머리는 타고났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우수한 두뇌와 화려한 언변이 재물로 직결되니 부귀를 겸전한 사주랄까? 학문, 재주, 재물, 감투, 어느 것 하나 빠진 것이 없는데다 왕년엔 외모마저 꽤 근사했다.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반면 트럼프는 부모의 힘이 막강한 사주로 딱히 귀격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공부 머리는 별로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임기응변에 탁월하다. 사주 전반에 예능과 투자의 기운이 다분하니 평생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부동산 사업에 투신했던 것이 자신의 사주 그대로이다. 자기가 슈퍼스타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온 듯하다. 과연 미국인들의 현란한 취향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하필 두 사람 다 비겁다자(比劫多者)다. 역술가들이 혼란스러워 했을 법도 하다. 비겁다자란 문자 그대로 ‘비겁이 많은 자’를 뜻하는데 명리학이 말하는 비겁이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와 ‘내 몫을 강탈해 가는 자’로, 이 두 요소는 수시로 역할이 뒤바뀐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돌아서는 것이 비겁이 다(多)한 현상이다. 형제, 친구, 동료가 어느 순간 라이벌이나 적수로 돌변하고 손익에 따른 야합을 거듭하는 등 인간관계의 번잡함이 극에 달한다. 즉 비겁다자의 생애란 ‘정글의 법칙’과 ‘생존 경쟁’으로 점철된 무한 도전의 연속이다. 이처럼 척박한 경쟁 구도를 돌파해야 한다는 이치를 본능으로 느끼고 있음인지 대체로 비겁다자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하며 타인의 지배나 간섭을 싫어한다. 절대로 굴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독선과 오만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의외로 몹시 외로움을 탄다. 두려워하지 않고 만사를 맹렬히 추진하는 데다 솔직함과 공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강압적 리더형이 되기도 한다.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무렵 필자는 일생에 걸쳐 클린턴을 좌절하게 만들었을 비겁의 위세를 생각해 보곤 했다. 1990년대 후반 모니카 르윈스키와 관련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추문에 전 미국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 뿐이랴, 그 사건을 필두로 대통령의 과거 여자관계가 속속들이 밝혀졌고 힐러리 클린턴은 뒷수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시적이나마 남편을 빼앗아간 여자들이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적수, 즉 비겁들이었던 셈이다. 그녀가 사회에서 맞닥뜨린 비겁들도 쉽지 않았다. 대학생이던 그녀는 민주당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을 위한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맥거번은 닉슨 대통령에게 크게 패했다. 2008년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하였고 그 뒤로도 꾸준히 기회를 노렸을 것이나 오바마가 연임을 하는 바람에 또 한 번 무산되었다. 올해 내내 미국의 언론은 클린턴의 당선이 기정사실인냥 떠들었지만 이러한 그녀의 이력은 필자로 하여금 종종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요컨대 그녀 앞엔 늘 넘기 어려운 ‘운명의 장벽’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본래 사람이란 촌철살인의 이성과 사유에 의해 움직이기보단 감성적, 충동적 환상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선거에는 늘 미묘한 변수가 작용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을 남 모르게 흠모하곤 했다. 물론 그는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한미관계에도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며 한국의 민주화에도 기여를 한 바 있다. 그가 속했던 공화당이 보수 강경책을 고수했기에 훗날 필자의 마음도 다소 돌아서긴 했으나 레이건이 집권했던 1980년대는 필자에겐 늘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비록 한국의 80년대는 젊은이들의 피와 항거로 얼룩진 암울한 시기였으나 미국의 정부 부처에서 근무했던 부친 덕분에 필자는 매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의 미국은 마냥 풍요로웠고 부친은 레이건을 찬양했으며 어린 필자의 눈엔 한 때 영화 배우였다던 이 핸섬하고 세련된 미국의 대통령이 한없이 훌륭한 분으로 보였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레이건이 활동했던 80년대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하여 필자는 클린턴의 대선 패배에 일말의 동정을 느끼면서도 미국인들의 향수를 가슴으로 이해하며 인간 심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도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은 일생의 대부분을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많은 이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트럼프의 승리는 따지고 보면 우리의 환상과 현실의 충돌이 빚어낸 미약한 결과에 불과하다. 어차피 인류는 현재 돈과 쾌락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트럼프야말로 평생 바로 이 두 거대한 주류의 중심에서 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살아오면서 수 많은 비겁들을 만났을 것이다. 덕택에 그도 몇 차례나 이혼을 경험했으며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정적들도 무수히 극복해왔을 터이다. 그러나 이미 운이 하향세에 접어든 클린턴에 반해 트럼프의 대운은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레이건의 지지자였던 그의 전략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의 환타지와 기막히게 부합한, 다시 말해 천지의 기운이 감응한 바로 그 순간에 그는 대선을 치루었던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번 승리자의 공격적 성향이 한반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소 근심스러워 한다. 트럼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동시에 헛점도 많은 사내다. 그의 사주엔 꽤나 돈 많은 연예인이 도사리고 있으니 이번엔 하늘이 제법 흥미로운 제왕을 냈다. 퍼스트 레이디도 참 이색적이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할 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몇 년 간 재미있을 것 같다.
현 김태련 한의원 원장,
태을명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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