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바트 현지 한인 봉사자 모임, 대외 행사서 성과
한국전 참전 추모 ‘Korean Grove’에 ‘한국의 뜰’ 표지석 제막
지난해 10월, <한국신문>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타스마니아(Tasmania) 주도인 호바트(Hobart) 한인 커뮤니티를 조명한 바 있다. 5개 주(NSW, QLD, VIC, SA, WA)와 1개 테러토리(ACT)에 한인회가 구성돼 동포들의 권익과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하는 시점에서, 한인 거주역사가 제법 오래된 타스미나아에 한인회가 형성되지 않은 것은 다소 궁금한 점이 있었다.
당시 본지가 접촉했던 호바트 한인들 대부분은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동포단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한인회이든 아니든, 대정부 및 본국과의 창구가 될 대표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1년 후, 지난 9월 호바트와 론세스톤(Launceston)에서 만난 한인 동포들은 여전히 이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거주 동포 수를 감안할 경우 아직은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비쳤다. 지난해에 이어 타스마니아 한인 커뮤니티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5월21일(토), 호바트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타스마니아 거주 호주 예비역 군인들이 마련해 놓은 ‘한국 정원’(Korean Grove)에 한글로 새긴 ‘한국의 뜰’ 표지석을 제막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정원 입구에는 ‘Battle of Korea’라는 글이 들어간 입간판에 한반도를 담은 지도, 조금 더 안쪽에 콘크리트 벽을 설치하고 한국전에서 희생된 호주 참전군인을 기리는 동판 명패만이 덩그러니 있어 호바트 한인들도 안타까움을 표해 왔다.
바로 이곳에 한국어와 영어를 명기한 표지석 제막을 추진한 이들은 호바트 거주 한인 커뮤니티의 봉사자 모임인 ‘타스마니아 한인봉사연합회’(회장 박찬원, 이하 ‘연합회’)였다.
이날 제막식 행사에는 전 호바트 시장을 지낸 데이먼 토마스 대한민국 명예영사, 타스마니아 다문화위원회 관계자들, 표지석 제작을 지원한 경기도 가평군 김성기 군수, 타스마니아 현지 한국전 참전 호주 용사, 호바트 현지 한인 동포들이 참석해 표지석 제막과 함께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며 서로간 우호를 다지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인봉사연합에 따르면 이 공간은 지난 1999년 6월25일, 한국전 참전 호주 용사들이 한국전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했다. 이후 타스마니아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매년 4월24일 ‘가평 데이’를 기해 이곳에 모여 한국전 당시 가평 전투에서 전사한 동료를 기리는 추모 행사를 이어 왔다.
이에 자극 받은 호바트 거주 한인 동포들은 정기적으로 이 정원을 청소해 왔으며 ‘가평 데이’ 등에는 참전용사들의 행사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이런 활동을 통해 이들과 깊은 교류를 이어온 동포들은, 이들의 힘을 빌어 이곳에 세워진 한반도 지도상의 ‘일본해’(Sea of Japan) 표기를 ‘동해’(East Sea)와 병기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으며, 또한 이곳 정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다문화위원회 본관 아래층 벽면에 마련된 ‘International Wall of Friendship’에 한인 이민자그룹을 상징하는 태극기 문양의 기념패를 부착하는 작업까지 일궈냈다.
일명 ‘우정의 벽’으로 불리는 이 공간은 타스마니아 다문화위원회(Multicultural Council of Tasmania)가 타스마니아에 거주하는 전 세계 이민자 국가를 상징하는 일정 크기의 패를 벽면에 장식해 놓은 것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벽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패가 누락되어 있었다. 이 벽면을 장식할 당시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할 만한 단체가 없다 보니 다문화위원회 측에서도 어느 창구를 통해 한인사회에 연락을 취할지 몰라 누락된 것이었다.
이 ‘우정의 벽’ 한국 상징물 부착 또한 ‘연합회’가 추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지난해 11월 일본 이민자 그룹과 함께 태극기가 들어간 패가 제작돼 60여개 국가 기념패와 함께 나란히 ‘우정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다문화 ‘우정의 벽’에
태극기 문양 기념패 부착도
이 같은 작업에는 호주의 한국전 참전군인과 인연을 이어온 경기도 가평군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가평전투로 이름을 알린 호주 육군 제3대대는 한국전 당시 호주군 가운데 가장 먼저 참전한 부대로, 특히 이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해야 한 상황에서 가평에 남아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했으며, 한국군과 유엔군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반면 호주군은 이 전투에서만 339명이 전사하는 타격을 입었다.
현재 시드니 북부 벨로스(Belrose) 지역(suburb)에는 ‘가평 스트리트’(Kapyeong Street)가 있는데, 도로명을 ‘가평’으로 지정해 기릴 만큼 한국전 당시 호주군이 경기도 가평에서 치렀던 가평전투(Battle of Kapyong)는 매우 중요한 격전이었으며, 오늘날 ‘가평’이란 지명은 호주 참전용사들에게 ‘희생과 영광’이라는 말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만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평군의 지원은 현지 한인 동포와 호주군 참전용사들간의 교류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가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2010년 결성된 ‘연합회’는 그 동안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이곳 ‘한국 정원’ 청소 및 단장 등의 활동을 벌여 왔다. 이를 통해 한국전 참전용사들과도 깊은 우정을 이어갔고, 이런 교류는 타스마니아 내 한인 커뮤니티가 호주의 다문화를 위해 공헌하고 있음을 보여 왔다.
‘우정의 벽’ 장식물 추진이 원활하게 이뤄진 배경에는 참전용사들의 힘도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연합회의 박찬원 회장은 “타스마니아 한인회든 아니면 다른 한인 단체든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할 동포 기구가 있었다면, 이런 작업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정부 창구 있었으면
보다 수월했을 것”
다문화위원회 ‘우정의 벽’ 장식, 그리고 ‘한국 정원’ 내 한국어 표지석 제막은 타스마니아 유일의 한인 동포단체인 ‘연합회’가 대외적으로 펼친 활동의 첫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200여 소수민족 이민자들로 구성된 호주의 다문화 사회에서 각 출신국 이민자 커뮤니티의 대표 단체가 왜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박 회장이 느낀 아쉬움도 바로 이를 대변한다.
지난해 타스마니아 한인 커뮤니티 취재를 통해 확인한 타스마니아 거주 한인동포는 약 1천명에 이른다. 이는 가장 최근의 센서스인 2011년 인구조사 결과(620명), 연방 교육부 및 이민부 자료상에 나타난 유학생,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워홀러)들의 타스마니아 체류자를 종합하여 추산한 수치이다(2016년 8월 실시한 센서스 집계는 내년 8월쯤 나올 전망이다).
시드니(NSW 주)나 멜번(Melbourne / 빅토리아 주), 브리즈번(Brisbane / 퀸즐랜드 주)처럼 한인 거주 동포가 많고, 또 상당 부분 한인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개인 비즈니스가 다양한 부문에서 이뤄지는 경우 동포들간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영주비자나 시민권을 취득한 동포들의 수와 폭넓게 확산되지 못한 개인 비즈니스를 감안하면, 사실 타스마니아 한인 커뮤니티는 기반 자체가 아직은 취약하다는 것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확인한 동포 비즈니스 가운데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한국산 식품을 공급하는 식품점, 동포운영 식당, 미용실, 유학원, 자동차 정비 등이 있으며, 종교기관 또한 호바트 2개, 타스마니아 제2도시인 론세스톤 2개 등이었다. 물론 인구조사를 통해 확인된 620명의 한인 동포 가운데 상당 부분은 개인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농장, 숙박, 무역, 용역 등 여러 분야에 망라되어 있다. 다만 현지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식품이나 요식업처럼 동포들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일일이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커뮤니티 기반
취약한 것도 사실
이런 한인 동포들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타스마니아에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는 호바트에 본사를 둔 목재회사 ‘Ta Ann Tasmania’(TAT)의 강정민 회장이다. TAT는 그가 아주 오랜 시간 타스마니아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한 끝에 설립, 현재는 타스마니아 주요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한 회사이다.
지난 2007년 호바트 남쪽 휴온 밸리(Huon Valley) 공장에 이어 이듬해 호바트 북쪽, 자동차로 약 5시간 거리에 있는 스미스톤(Smithton)에 제2공장을 설립한 TAT는 합판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얇은 베니어(veneer)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두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약 15만 입방미터(m3)에 이른다.
지난해 본지가 TAT를 방문할 당시 이 회사는 스미스톤 공장 내에 제3공장 건설을 마무리하는 단계였다.
이 세 번째 공장은 기존 두 곳의 공장에서 생산한 베니어판으로 직접 합판을 생산해고자 건립한 것으로, 지난해 11월 가공을 시작해 해외수출 및 ‘T Ply’라는 브랜드로 호주 내 대형 하드웨어(Hardware) 프랜차이즈인 버닝스(Burnnings), 마이터 10(Mitre 10) 등에 공급하고 있다.
TAT는 타스마니아 주 정부 삼림청의 허가 하에 벌목한 원목 외 목재, 즉 상품으로 판매가 불가능한 원목을 공급받아 합판 재료인 베니어판을 제조하는 곳이다.
부친을 따라 젊은 나이에 인도네시아 목재산업에 뛰어들었던 그는 동남아 열대우림에서 생산되는 원목을 대체할 합판의 지속적인 수요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타스마니아 산 고품질의 유칼립투스 나무를 보고는 이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기업을 일으키기까지 무려 20여년이 소요됐다. 그 긴 시간에는 그가 회사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을 담겨 있다.
현재 그의 기업은 타스마니아 정부의 두터운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회사 경영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제3공장을 신설한 당시에도 타스마니아 주 정부는 TAT에 750만 달러를 선뜻 지원했다. 전체 인구 50만여명에 불과한 타스마니아의 주 정부가 한 기업에 이 만큼의 자금을 지원한 것은, TAT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스마니아 한인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그는 이런 점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가정 적합한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타스마니아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든 한인 동포들은 대정부 창구를 위한 한인단체 필요성과 함께, 이를 이끌어 갈 인물로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처럼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그는 대표단체 구성에 대해 선뜻 않고 있다.
대표 기구 설립 필요성,
모든 이들이 공감하지만…
그의 해외 생활은 올해로 46년째가 된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부친의 인도네시아 목재사업에 뛰어들어 동남아 국가에서 생활하다가 1984년 호주에 정착했다. 그가 선택한 곳이 바로 타스마니아 호바트였다.
강 회장의 부친은 한국 전쟁 직후 해외로 나가 기업을 일궈 성공한 뒤 현지 한인들과의 교류와 단체를 기반으로 한 권익활동에도 주력했다. 또한 기업 이윤을 현지 지역 학교 건립을 위해 그야말로 ‘통 크게’ 기부해 왔다. 그렇게 강 회장 부친의 기금으로 설립된 학교는 5개에 이른다. 일제시대 치하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학교 건립으로 풀면서, 그런 기부를 통해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하거나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의 권익을 도모해 온 것이다.
그런 부친을 보면서, 또 반세기 가까운 해외생활에서 강 회장 역시 한인 동포들의 권익과 커뮤니티 위상을 위한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타스마니아 한인회 설립의 뜻을 가진 모든 이들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기획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