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가져온 사상 초유의 해외이민 중단사태를 통해 호주에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젊은, 전문 노동자를 중심으로 기술이민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호주 경제, 사회, 교육 분야 정책을 제시해온 그래튼 연구소는 ‘Rethinking permanent skilled migration after the pandemic (판데믹 이후 영주기술이민 재고)’’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사업투자혁신 프로그램(Business Investment and Innovation Program,BIIP)’을 폐기하고 대신 숙련이민자 대상 기술이민 비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숙련이민제도의 중심을 고숙련 고용 이민으로 이동하면 매년 호주로 오는 이민자 그룹이 평생 호주에 살면서 내는 개인소득세가 거의 40억 달러에 달해 경제적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주후원이민을 직종 제한 없이 연간 평균 전일제 소득 8만 달러 이상인 노동자로 제한하는 것과 같은 개혁을 통해 호주 숙련 비자를 가장 가치있는 능력을 가진 잠재 이민자를 대상으로 할 수 있으며 기업과 이민자 모두에게 고용 후원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래튼 연구소의 계산에 따르면 매년 이민자 유입에서 최소한 90억 달러가 정부 금고에 추가될 수 있다.
보고서는 최근 연방정부가 영주숙련 이민자 유입을 더 나이가 많고 숙련도가 떨어지는 이민자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영주숙련비자 4건 중 1건 이상이 사업체 투자 확대와 아직 효과가 증명되지 않는 ‘세계적 재능(Global Talent)’ 프로그램에 할당됐다는 것이다.
그래튼 연구소는 이러한 변화가 매년 영주숙련이민자 유입이 가져오는 평생 재정 수입을 최소한 20억 달러 줄이기 때문에 정책을 파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고서 주저자인 그래트 연구소 브렌든 코우츠 경제정책실장은 “국경을 다시 열 때 호주는 과감하게 영주숙련이민자를 장기적인 경제적 잠재력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숙련이민자는 일반 호주인보다 더 젊고, 기술이 더 많으며 더 많은 소득을 버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공공서비스로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세금을 지불하고 평생에 걸쳐 혜택이 되기 때문에 호주인들에게 재정적 몫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호주는 현재 영주숙련이민자를 4가지 방식으로 선택한다. 한가지는 학생이나 워킹홀리데이 비자 또는 임시취업비자로 호주에 온 뒤 일자리를 찾아 고용주 후원을 받아 영주비자를 받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점수제로 나이, 학력, 경력 같은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래튼 보고서는 점수제가 더 젊은 숙련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독립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숙련 영주비자 4가지
1.점수제 숙련이민: 연령, 학력, 경력, 직종, 영어능력에 따라 점수 할당
2.고용주 후원: 고용주가 영주비자 후원
3.사업혁신투자: 혁신, 투자, 사업 부분에서 성공인 재능을 증명할 수 있는 외국인 대상
4.세계적 재능: 10개 부문에 종사하는 고숙련 전문가 대상
BIIP 비자는 혁신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호주에 자본을 투자하거나 사업체를 구입할 사람들이 대상이다. 자본투자와 사업체 구매를 통해 혁신 부문을 확대하고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이다.
그래튼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투자혁신 제도(BIIP) 비자 소지자가 호주 경제에 가져오는 혜택은 다른 숙련이민제도를 통해 선정되는 숙련이민자보다 적다. BIIP 비자 소지자는 더 나이가 많고, 영어능력도 뒤쳐지며, 소득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코우츠 실장은 BIIP 비자 소지자가 없으면 자금지원이 안 될 사업에 투자하거나 호주 사회에 혜택을 줄 정도의 기업가적 능력을 발휘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실장은 사업투자비자 소지자가 “기업가 정신이나 투자에 관한한 호주사회에 실제로 가져다 주는 것이 많지 않다”며 이 비자를 1만 3500건으로 2배 이상 늘리는 연방정부의 결정은 정당화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 비자를 폐지하면 영주숙련이민자 평균 연령을 거의 2년 낮춰 매년 유입되는 영주숙련이민자 그룹이 평생 지불하는 개인소득세가 37억 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4번째 숙련영주비자는 ‘‘세계적 재능제도’로 특히 기술분야에서 고숙련 전문가가 호주에서 영주 거주하고 일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비자는2018-19년 시범사업으로 비자 1000건으로 시작한 이후 급증해 올 회계연도에는 1만 5000건이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코우츠 실장은 이 비자제도의 가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규모를 축소하고 확대 결정을내리기 전 평가”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신 고용주이민과 점수제를 통해 할당되는 숙련노동자 비자 수를 확대해야 한다.
대신 점수제 비자는 숙련노동자가 부족하다고 확인된 직종으로 제한해서는 안되며, 지방 유학이나 전문직 견습기간을 수행하는데 대해 추가 점수를 할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보고서 주장이다.
영주숙련이민자 최고 5년
평균의 63%로 감소
호주 대규모 이민제도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이래 1990년대까지 영주비자는 호주에 도착하는 새 이민자에게 발급됐다.
이후 이민정책은 영주비자 제공 뿐 아니라 임시비자로 호주에 오는 것을 허락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영주비자는 현재 인원이 제한되어 있고 임시비자는 일부 국가 워킹홀리데이비자 발급 수 제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원제한이 없다.
2000년 이후 사실상 인원제한이 없이 계속 증가해온 숙련이민제도는 자유국민연합 정부의 정책변경으로 사실상 영주비자 발급 계획이 인원제한으로 의미가 변화되면서 전체 영주비자 숫자는 감소했다. 호주 영주비자 발급수는 최근 몇 년 사이 연간 19만건에서현재 연간16만건으로 감소됐다. 추가로 연방정부는 인도주의 제도를 통해 영주비자 1만 8750건을 발급한다.
영주이민은 호주에 기간 제한 없이 머물며 취업할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영주이민자 유입 중 대부분은 숙련이민이 차지하고 있다.
올 회계연도 호주 영주숙련이민제도에는 7만 9600건이 할당되어, 2013년에서 2018년까지 평균 12만 5000건과 비교해 약 63% 정도로 급감했다. 다음 회계연도에도 영주숙련이민 유입 규모는 올해와 같다. 반대로 임시비자 소지자는 급등해 2007년 50만건에서 현재 약 100만 건으로 거의 2배 정도 늘었다.
그래튼 연구소는 앞으로 이민정책 보고서를 시리즈로 발표할 계획이지만 호주 인구규모나 연간 전체 이민자 유입수를 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신 호주이민 제도가 호주에 가능한 최대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임시비자가 국내 영주비자 신청의 원천으로서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임시이민정책은 이번 보고서 분석 대상이 아니다. 보고서는 “임시비자 소지자가 일자리지킴 (지원금)에서 대부분 제외됐다”고 지적하며 이들이 “종종 경직된 비자 규칙 때문에 자신이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일이 너무 잦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현재 영주비자를 발급받는 이민자의 반 이상이 이미 임시비자로 호주에 체류하는 사람들이다. 영주숙련이민자의 경우 이 비율은 70% 이상으로 더 높다. 코우츠 실장은 “임시이민은 단기 숙련노동자 부족을 더 중점대상으로 해야할 수도 있지만 영주이민은 숙련노동 부족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단기적으로 부족한 숙련노동을 충족하기 위해 누군가를 데려오는 경우 소득세라는 측면에서 정말 큰 혜택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호주이민협의회(Migration Council of Australia) 칼라 윌셔 대표는 현재 호주에 있는 100만 임시이민자를 영주비자 후보자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임시 이민자가 영주비자로 갈 수 있는 길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윌셔 대표는 또한 코로나19로 임시이민자와 영주이민자의 처우 불평등이 드러났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임시비자 소지자들이 평생 호주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영주이민제도를 확대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임시비자와 영주비자간 연결선을 구축할 때라고 강조했다.
코우츠 실장은 “코로나19 재난에서 한가지 긍정적인 점은 호주가 숙련이민유입을 재설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그래튼 보고서가 현재 호주에 사는 호주인과 이민을 원하는 외국인에게 모두 “호주를 더 좋은 장소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내무부 대변인은 현재 숙련이민제도가 “호주의 경제, 인구, 노동시장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설계”됐다고 밝혔다. 현재 연방 의회는 여당 주도로 숙련이민제도와 관련한 장기적 문제를 조사하고 있으며 7월 보고서 발표 이후 정부에서 권고안을 고려한다.
ⓒcopyright 한국신문 박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