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 조성-라이프스타일 추구 등 계획성 있는 도시 개발 뒤쳐져
시드니는 호주 최대 도시이다. 호주를 언급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상징적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도시 이미지는 그러나 ‘호주 최고의 글로벌 도시’로서의 경쟁에서 점차 브리즈번(Brisbane, Queensland)에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드니는 아름다운 항구와 도시 내에 자리한 여러 국립공원 등 빼어난 자연 경관을 인정받고 있지만 건축과 도시 환경 측면에서는 브리즈번이 더 뛰어날 수 있다고 일단의 도시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시드니 기반의 부동산 브랜드 홍보 및 마케팅 전문회사 ‘Hoyne’(https://hoyne.com.au)의 앤드류 호인(Andrew Hoyne) 대표는 “시드니는 공공영역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면서 “민간 및 공공 부문에서 활용되지 않는 많은 자산들이 있고, 이것들을 보다 효율적인 용도로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호인 대표는 최근 글로벌 도시를 주제로 한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어 “시드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왕립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 하이드 파크(Hyde Park) 등 녹지 공간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건축 측면에서는 1970년대부터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세계적 수준의 도시라는 평가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왔다”고 덧붙였다.
시드니와는 대조적으로 브리즈번은 비약적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게 호인 대표의 평가다. “브리즈번은 미래를 위해 철저한 계획 하에 도시 건설을 추진해 나가고 있으며, 그 계획들이 결실을 맺는다면 앞으로 10년 이내 호주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어 호인 대표는 “시드니는 언제나 역동적이고 흥미와 즐거움을 주는 도시였지만 이제는 뒤처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 도시들을 조사하고 또 그 지역의 도시의 전문가, 건축가, 공공기관 관계자 및 거주민들을 취재해 해당 도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담아 왔다. 그는 이 방대한 취재 자료를 500페이지에 달하는 <The Place Economy, Volume 2>라는 책에 담았다.
그가 이 책에서 진단한 것을 보면, 시드니 입장에서는 반가운 내용이 없다. 도시를 보다 매력적이고 거주자 친화적으로 조성하는 ‘플레이스메이킹’(placemaking) 측면에서 베를린(Berlin)이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전 세계 대도시들이 이런 도시 기능을 추구하는 가운데 시드니의 근시안적 도시 계획은 슬프게도 각 건축물의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뻗어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호인 대표의 지적 가운데는 시드니 도심 속 거리에 빈 벽이 너무 많다는 점도 포함된다. 작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몰입시키며 흥분하게 만들기도 하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건물 최상층 또한 활용도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호인 대표는 “건축 구조물 배치(groundplane)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시드니 도심 피트 스트리트(Pitt Street) 상에는 음식점이나 음료 판매점, 소매, 공공공간 등 있어야 할 것들 대신 40미터 높이의 벽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는 또한 “시드니의 건축물들은 옥상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야외에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며, 시드니는 높은 곳에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호인 대표는 “작은 부분의 투자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고, 사람들에게는 보다 흥미로운 도시 경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반면 브리즈번은 공공장소에 대해 많은 계획을 세우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브리즈번 당국은 사우스 브리즈번(South Brisbane), 웨스트엔드(West End), 포티튜드 밸리(Fortitude Valley)와 같은 교외 지역을 재생시켜 보다 역동적인 도시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한 살기 좋은 지역으로 발전시켜 왔다.
호인 대표는 그 한 예로 사우스 브리즈번의 피쉬 레인(Fish Lane)을 언급했다. 먹거리와 음료, 주류업소는 물론 예술품 숍 등 도시 라이프의 허브로 바뀐 이곳은 사람들에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전 세계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시드니 치펜데일(Chippendale)의 주거단지인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서리힐(Surry Hills) 등 비교적 ‘그라운드플레인’을 고려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 같은 시도가 전혀 없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시드니 도시개발 자문그룹인 ‘시드니위원회’(Committee for Sydney)의 이몬 워터포드(Eamon Waterford) 위원장 또한 호인 대표의 지적에 공감했다.
“시드니는 그리 좋은 장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이몬 위원장은 “최근 수년 사이의 주택 시장 호황은 좋은 아파트를 짓는 데 초점을 맞추어 급하게 건축된 것이며, 공공영역에서는 관심이 모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결과 살기 좋은 건물은 많지만 현관을 나오면 아무 것도 없이 큰 대로가 펼쳐질 뿐”으로 “도시 라이프를 즐길 만한 곳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개발 관련 연구에 따르면 많은 회사들의 개발 프로젝트 투자 수익이 10%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 피쉬 레인(브리즈번)이나 시드니 치펜데일에 조성된 주거단지 ‘센트럴 파크’처럼 거주자 친화적인 ‘플레이스메이킹’을 고려한 개발의 경우 30%의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다.
주거지 및 상가개발 회사인 ‘Aria Property Group’이 사우스 브리즈번, 피쉬 레인에서 진행한 럭셔리 아파트 프로젝트 ‘The Melbourne Residences’는 호주 부동산 시장 위축과 주택가격 하락 상황에서도 각 아파트 당 평균 18만5천 달러의 가치 상승을 기록했다.
호인 대표는 “창의력, 혁신 정신과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면서 “‘플레이스메이킹’을 고려한 개발로 인근 지역 발전의 후광효과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전 세계 도시에서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리즈번의 경우 거대한 정부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브리즈번 시 의회(Brisbane City Council)가 통제한다는 점에서 도시운영 방식, 미래 계획, 기반시설 투자 등에 대한 통일된 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시드니위원회’ 워터포드 위원장에 따르면 브리즈번과 달리 시드니의 경우 은행 및 금융기관들이 지배하는 도심 지역이 있는데, 이는 공공 부분에 우선하는 지역이며 특히 NSW 주 정부를 비롯해 여러 소규모 위원회 등 33개 의사결정 기구가 있다. 결국 이는 “보다 나은 도시 조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주요 쟁점이 되어온 ‘Lockout Laws’와 야간경제(night-time economy) 사안이 진정한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시드니 시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호인 대표는 “이번 <The Place Economy, Volume 2> 집필을 위해 전 세계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말하는 것은 ‘시드니를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두 번째로 하는 말은 ‘시드니의 밤은 죽었다던데 야간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는가’ 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Sydney VIVID’, 동성애 축제인 ‘Mardi Gras’ 등 전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글로벌 도시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야간 경제(밤 여흥)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시드니를 방문하고 싶어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