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난민 관련 연구원들 설문 조사… 1세대 이민자 절반, “정치 이해력 부족”
다문화 사회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및 남아시아 이주민 커뮤니티의 상당수 구성원의 경우, 호주 민주주의 제도에 참여하고 싶어하지만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새로운 연구가 나왔다.
다문화 커뮤니티 이주민 문제를 연구하는 NSW대학교 수쿠마니 코라나(Sukhmani Khorana) 박사, 멜번대학교(University of Melbourne) 연구원 판 양(Fan Yang) 박사가 주도한 설문 조사 자료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1세대 이주민 절반가량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답변이었다. 이는 이들 중 다수가 각 정치인 및 호주 정치의 작동 방식 관련 정보에 입각하지 않고 투표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주민 및 난민 커뮤니티 전문가인 코라나 박사는 이 같은 이해 격차로 인해 새 이민자 그룹 내에 잘못되거나 거짓된 정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지난 2022년 연방 선거를 앞두고 공영 ABC 방송은 중국어 소셜 앱 ‘WeChat’에서 중국계 호주인과 뉴스 매체가 선거와 관련해 호주 정보기관의 간섭을 받고 있다고 비난하는 가짜 공포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원주민 자문기구의 의회 상설을 위한 ‘Voice to Parliament’ 국민투표(헌법에 이를 명시하고자 했기에 국민투표롤 실시했음)가 실패하기 전, 많은 선거 분석가들은 다문화 커뮤니티를 투표권을 활용하는 것이 ‘Yes 캠페인’ 측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핵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국민투표 캠페인 당시 전문가들은 WeChat에서 제공되는 ‘Voice to Parliament’ 관련 정보의 압도적 다수가 허위 내용이며 원주민 커뮤니티를 비하하는 일부 메시지를 포함한 ‘No 캠페인’ 자료라고 경고했다.
빅토리아(Victoria) 주 중국계 커뮤니티 리더 중 하나인 민웬 우(Minwen Wu)씨는 다른 정치 체제를 가진 호주로 이주했을 때, 이들이 호주 선거에 대해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멜번 동부, 박스힐(Box Hill)에서 중국계 이민자를 위한 영어 교실을 운영하면서, 연구원들의 이번 설문 조사에 도움을 준 우씨는 그 결과에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는 “WeChat에서 중국계 이민자들이 ‘블랙번(Blackburn)에 살고 있는데, 박스힐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며 “중국 본토에서 온 이들에게는 선거제도에서 호주와 중국간 큰 차이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례를 기반으로 우씨는 호주 정착 이주민과 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무료 영어교육 과정인 ‘Adult Migrant English Program’에 호주 민주주의 주제의 시민 교육을 결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주민 가정 대상의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라나 박사의 이번 연구 프로젝트 이전까지, 이주민 커뮤니티의 정치적 참여 수준이나 선거 패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수행되지 않았다.
그녀가 ABC 방송과 함께 한 조사는 2023년과 올해, 남아시아 및 중국계 이주민 192명과 5개의 포커스 그룹을 기반으로 했다.
코라나 박사는 남아시아와 중국계 커뮤니티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이유로 “특히 NSW 및 빅토리아 주의 경우 이들 커뮤니티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연방 의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우리의 이번 설문 샘플이 많지 않아 전체 커뮤니티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러 커뮤니티 단체에서 설문을 발송하는 방식 등 광범위한 샘풀을 얻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통계청(ABS) 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호주 내 인도 태생 인구는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이민자 커뮤니티를 구성하며, 해외 출생 전체 호주 인구의 약 10분의 1, 국가 전체 인구의 2.9%를 차지한다.
그런 한편 중국에서 태어난 호주 인구는 세 번째 이민자 그룹으로, 해외 태생 인구의 7.8% 비중이다. 이외 남아시아 국가인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는 2022-23년 영주 이주자 상위 10개 출신 국가에 속했다.
코로나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자국에서 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이들이 호주로 그 열정을 가져 왔고 다른 지역사회 구성원을 돕는데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코라나 박사는 연구 과정에서, WeChat 상에서 온라인 그룹을 운영하는 말레이시아계 중국인 이민자 W씨와 만났던 일을 소개했다. 그녀는 “W씨가 주도하는 온라인 그룹에는 약 500명이 있는데, 이들은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호주의 투표 진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른 이들에게 알리려 노력한다”며 “이는 지역사회 전반에서 행해지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라나 박사는 “많은 이민자들이 대개의 호주인과 같은 수준의 정치 이해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략 2~3차례의 선거 주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지방선거는
또 하나의 기회”
중동 및 무슬림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치 소양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해 온 이슬람 커뮤니티의 ‘Muslim Vote’나 ‘Muslim Votes Matter’와 같은 단체는 최근 수개월 동안, 이스라엘이 가자(Gaza)에서 벌인 전쟁에 대한 호주 정부의 입장을 비판해 왔다.
Muslim Votes Matter는 해당 웹사이트에서 “무슬림 배경의 유권자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석은 약 20개 정도”라면서 자신들은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할 강력한 입장에 있다”고 주장한다.
다문화 단체 ‘Allies in Colour’를 이끄는 타리니 루웨트(Tharini Rouwette)씨도 코라나 박사의 연구에 도움을 준 이민자 커뮤니티 일원 중 하나이다. 오는 10월 멜번 시의회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그녀는 멜번의 경우 비시민 거주자도 지방의회 선거에 투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다문화 사회에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1년 인구 조사를 보면 광역멜번 인구의 거의 절반은 해외출생자이다. 멜번 시 웹사이트는 “유학생이라면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며 “(지방선거 참여를 위해) 반드시 시민일 필요는 없으며 멜번 시에서 주택이나 아파트를 임대해 거주한다는 임대 계약서가 있으면 된다”고 알리고 있다.
루웨트씨는 올 10월 치러지는 멜번 시의회 선거는 호주 시민이 되기 전, 호주에서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라면서 “빅토리아 선거위원회(Victorian Electoral Commission)는 여러 국가 언어로 선거인 등록 방법을 알려주는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멜번 시(City of Melbourne)에 따르면 시의회는 소셜미디어, 지역 신문, 홍보물을 통해 중국어 등 8개 언어로 선거인 등록 방법을 알리고 있다. 멜번 시 대변인은 “이 정보(선거인 등록 방법)는 웹사이트, 소셜 미디어 플랫폼, 130개 이상의 커뮤니티를 통해 제공된다”면서 “또한 40개 이상 커뮤니티에서 팝업 세션을 통해 선거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라나 박사는 시민권 취득을 위해 시험을 치르는 대신, 또는 이 시험에 추가하여 호주 선거 제도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것이 호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며 이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의 책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호주 시민이 되기 이전, 오랫동안 임시 또는 영주비자로 체류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호주 선거 시스템 이해)는 지방의회 수준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다음 연방선거가 내년 5월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코라나 박사는 “정부, 미디어, 지역사회 단체가 새 이주민들에게 시민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정보에 입각해 정당이나 정치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간단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보다 일찍 시작해야 하며 보다 조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