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탈을 쓴 인간일까? 인간의 탈을 쓴 동물일까?
“밥 먹었어요?”
“잘 지내요?”
라는 인사가 주를 이뤘다. 예전에는. 요즘에는 페북(Facebook)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안부를 전한다.
“왜 요즘 페북 안 해?”
“인스타 보니 일 안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조차, 아주 오래 전에 페북에 올린 내용으로 어떻게 사는지를 이해하겠다는 인사를 건넨다. 미래세계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매체가 ‘나’를 대변하게 될 것이다. 필시. 그러기 전에 신문을 통해서든 연극을 통해서든, 사람인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모든 것을 표현해야겠다.
어떤 이에게 법륜스님의 ‘사람답게 사는 의미’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서 여기저기 치여, 늘 불평불만을 달고 살던 사람이 법륜 스님을 만난 김에 물어봤다고 한다. ‘상사한테 치이고 후배들한테 무시당하고 집에서는 마누라하고 새끼들한테조차 외면당하고 사는 내가 과연 사람인가요?’라고.
법륜 스님은 산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 산에 올라가서 다람쥐를 보라고. ‘다람쥐는 가다가 바위가 있으면 비켜 가고, 낙엽에 치이면 버리고, 비가 오면 피하고, 천둥이 치면 숨고 한다. 바위한테 왜 거기에 있냐고 화 안 내고, 그렇다고 비 온다고 비한테 시비 걸지 않는다’.
그저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피하고 숨고 하면 좋지 않으냐며, 불평하지 않는 삶을 사니 그 얼마나 행복하겠냐고. 사람들이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을 만족해하지 않고 불평만 달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이 사람은 여기서 굴하지 않고 또다시 물었다. ‘그러면 다람쥐처럼 살면 되겠네요. 다람쥐처럼 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게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겁니까?’라고 질문을 해버렸다.
법륜 스님은 ‘그러면 다람쥐 같은 동물이나 다름없지 않겠냐’면서, ‘그래도 우린 사람인데’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다람쥐들이 가다가 바위를 만났을 때, 낙엽에 치였을 때,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절대로 옆에 있는 다람쥐들을 도와주지 않는다’였다. 다람쥐들은 불평불만이 없이 살지만, 옆에 있는 다른 다람쥐들을 위하지 않는다는 거. 즉 다른 이를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서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의미는 곧 다른 사람과 같이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가정이 살고, 학교가 일어나고, 사회가 성장하고, 정치가 뜻을 이루고,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 지금 교민사회는 어떤가. 과연.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기는 보는 것일까. 나 먹고살기 힘든데 남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다람쥐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도 이런 말을 했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손이 있다. 만약 내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고.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의미 있게는 살고 있는 것일까? 사람답게는 사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의 탈을 쓰고 인간인 척 살고 있는 것인지 잠깐 둘러봐야겠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구운몽 2’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