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를 깊이 겨냥할 때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성추행’, ‘성폭행’ 문제들이 심각하다. 그것도 연극계 대부라 일컫는 연희단거리패의 연출자 이윤택은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잘못을 인정하고도, 다른 부분은 인정하지 않아 몰매를 맞고 있다. 또한, 극단 목화레퍼토리의 원로 연출가 오태석 대표도 논란이 일어 폭풍을 맞고 있다.
이런 일의 발단이 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과거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들의 보도가 계기였다. 이후 할리우드를 넘어서 다른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미국과 영국 정치권, 언론으로 확대됐다. ‘나도 당했다’는 제보가 속출하면서 SNS에 해시태그 ‘미투#MeToo’로 발전해 번져나갔다.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본 사회 변화 중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움직임으로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에 동참하고자,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 여성 수백 명과 남성 수십 명 개개인의 용기로 시작된 이 ‘미투’ 운동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이나 어제의 일이 아닌 과거의 이야기들이다. 이건 마치 곪고 곪다가 봇물 터지듯 과거의 사건들이 속속들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침묵’으로 일관됐던 이런 일들은 사회 현상의 하나였다. 문제를 짚고 넘어갈 생각들은 못한 채, 누가 감히 영화의 대제작자를, 연극사의 큰 획을 그은 사람을 어찌할 수 있었을까?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문제들은 이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유명하다고, 돈이 많다고 사회적 힘이 강한 남성이 업계의 하위에 있는 여성 또는 남성에게 저지른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억울하다고, 속상하다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사회. 그 사회만을 비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각하고 고발하는 활동으로 이 ‘미투’ 운동은 또 다른 사회 현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이다. 다만 이들의 피해 주장은 가해자로 뿐만 아니라, 이를 용인해야만 했었던 ‘침묵’을 깨고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
사회가 또는 삶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고 투덜대며 힘들어하지 말아야 한다. 그 ‘침묵’에서 깨어나 지금의 문제를 깊이 있게 관찰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내 일, 내가 맡은 일에 집중하면서,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려 애써야 할 것이다. 다른 일에 기웃대지 않고,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학연이나 지연에 줄 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침묵’에서 깨어나 변화해야 할 때이다.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벽을 허물어야 한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변화경영 전문가이신 구본형이 말했다. 빵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온다고. 지루함을 만나면 지루함을 죽이고, 매너리즘을 만나면 매너리즘을 죽이고, 적당주의를 만나면 적당주의를 죽여야 한다. 그러니 성폭력, 성폭행을 만나면 그것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 힘들게 찾아올수록 내면에서 더 깊은 힘을 찾아낼 기회를 얻게 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연극영화계의 성폭력 사건은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를 깊이 있게 겨냥할 때라 생각한다. 만약 그 ‘침묵’이 과거이건 현재이건, 아니 미래에 있을 것 같아도 ‘깨어야 할 시기’라는 것을.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구운몽 2’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