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가족
1장
4년 전부터 한국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생활비가 끊겼다. 회사가 힘들다고 하는 남편은 오래 전에 여자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김치공장에 취직했다. 27살의 첫째 딸은 직장에 다니고 둘째 딸은 10학년이다. 엄마 친구 딸이 몇 년째 쉐어를 하고 있다. 둘째 딸이 1박 2일로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한다. 왜 가냐고 하니 친해지려고 간다고 한다. 이미 친한데 뭘 더 친해지려 하냐고, 여자끼리는 위험하다고 반대한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여자 말고 남자도 간다고 했다. 그러면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 남자는 게이라고 한다. 게이는 남자 아니냐고 엄마가 물으니 둘째 딸은 아무 일 없을 거니깐 보내달라고 조른다. 게이 같은 애를 왜 사귀냐고 엄마가 소리 지른다.
둘째 딸: 엄마 게이가 뭐 어때서? 게이는 사람 아니야? 왜 만나지를 못해. 그리고 1박 2일을 왜 못가 같이? 여자끼리 위험하니까 남자도 간다는데.
첫째 딸: 공부나 해.
둘째 딸: 언니!
쉐어생: 그래 엄마 말 들어~(경상도 사투리다)
엄마: 그래 언니 말 들어. 니 언니 봐라. 학교 다닐 때는 학교, 집밖에 모르더니 지금은 직장 집밖에 모르잖아. 그리고 게이가 남자야?
둘째: 언니하고 비교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했지. 엄마. 그리고 게이가 남자인데 남자 같지 않아, 절대 안 건드려.
엄마: 그래도 남자가 가야. 아니지 그것도 위험하고. 아니 왜 하필이면 게이 같은 친구를 뒀어?
둘째 딸: 엄마 그거 discrimination(차별)이야.
엄마: 디스 뭐? 너 엄마 영어 못한다고 디스 하는 거야?
쉐어생: 너 지금 엄마한테 욕했지?(전라도 사투리다)
2장
첫째 딸: 바보야 그걸 엄마한테 곧이곧대로 말하면 어떡해? 그냥 교회에서 캠프 간다고 하고 가지.
둘째 딸: 그래서 언니는 맨날 거짓말 하고 다닌 거야? 그러니깐 남자가 없지 여태.
첫째 딸: 너는 내가 남자가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항상 남자가 많았어. 늘 항상. 알어?
쉐어생: 그럼 너란 애는? 집과 밖이 완전 다른 세상 아이구나. 너희 엄마 아시면 기절하시겠다. 얘(강원도 사투리다)
둘째 딸: 그런데 왜 말할 때마다 액센트가 바뀌는 거야? 쉐어생 언니는.
첫째 딸: (모발폰을 보며 재주 없게) 남자들이 바뀔 때마다 남자들 취향에 맞추느라 사투리 배웠겠지 안 그래?
그리고 둘째 너. 잘 들어. 두 번 말 안 한다. 집과 밖은 완벽하게 다른 세상이야. 뭘 새삼스럽게. 엄마가 꼭 아셔야 할까? 밖의 세상 이야기를?
둘째 딸: 언니. 그럼 나는 나는 어떻해 하면 돼?
김치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던 엄마는 황당한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해 집에 일찍 왔다. 첫째 딸과 둘째 딸 그리고 쉐어생의 대화를 엿듣고는 충격에 휩싸인다. 공부만 열심히 하고 직장에만 열심히 다닌다고 생각했던 첫째 딸의 이중인격 행동을.
3장
저녁 식사 메뉴는 평소와 다름없다. 피자와 김치. 음식마저 만들지 못하는 바쁜 일상생활. 그런데 뭔가 싸한 느낌의 엄마 얼굴.
둘째 딸: 안 갔잖아. 엄마 소원대로 1박 2일 안 갔잖아. 내 친구들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겠지.
쉐어생: 그런 의리 없는 것들하고는 안 놀아도 돼~ 얘(제주도 사투리다)
둘째 딸: 영어는 안 해? 쉐어생 언니?
쉐어생: 아직 호주 남자 친구가 없어. 얘.
첫째 딸: (늘 그렇듯이 모발폰만 보고 있다. 둘째 딸이 엄마 눈치를 보면서 언니를 툭 친다) 왜 그래?
엄마: 이 만큼 살았으면, 아니 이렇게 살았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난 아직도 바래… 처음에는 잘 먹고 잘 써야 하는 욕심에 남편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했어. 그다음에는 돈 걱정 안 하니깐 다른 걱정이 생겼어. 자식들 생각만 하자 했는데 이렇게는 살기 싫어서 이제라도 내 힘으로 돈을 벌자. 너희들만 생각하자. 너희들한테 나의 모든 것. 돈, 시간, 다 들였는데. 너희들은. 엄마라는 존재는 손톱만큼도 생각을 안 하네…(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내가 이 만큼 살았으면, 아니 이렇게 살았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렇지? 얘들아. 너희들의 마음, 생각, 행동 이런 거에 대해 내가 뭘 알았을까? 그냥 김치공장에서 김치만 담은 인생이었네? 내 인생은…
이 즉흥극의 마지막 장면은, 엄마가 중학생 때 사고 쳐서 태어났다는 쉐어생의 이상한 이성론의 발언으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피자와 김치가 지겨우니, 외식하자는 거였다.
사람들에게는 욕망이 있다. 의지라 할 수도 있는 그것은 자칫 행동이 되지 못하는 욕망으로 꺾일 때도 있다. 그리고 집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집 밖에서 찾게 되는 욕망을 볼 수 있었던 토론 연극이었다.
배우들이 연극에서 연기하는 목적은 보다 나은 ‘나’와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무대에 선다고 남보다 앞서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토론 연극을 통해 먼저 배우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그려보고, 그다음엔 관객들이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가공의 현실인 연극 속에서 먼저 세계가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모든 인간 속에 존재하는 적성이며 인간성의 진실한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