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이 노래가 아니야. 좀 더 신나는, 기쁨에 찬 노래 좀 부르자!
양옆 무대, 열린 공간 속으로 잔뜩 긴장된 얼굴들 모두가 까만 옷들을 멋있게 차려입었다. 남자들은 양복이나 턱시도를 입었고 여자들은 블라우스에 긴치마다. 그 수많은 합창단 중에 하필이면, 맨 앞줄 중앙에 두 남자가 눈에 띈다. 잘생긴 호주 청년과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자리를 잡고 무대에 선다. 그리고 ‘상의 실종’(한국 사이트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패션을 논할 때, ‘하의 실종’ 패션이란 하의를 안 입은 것 같이 맨다리가 다 보일 때 쓰이는 표현이다. 하의 실종의 반대인 ‘상위 실종’이란 표현을 써봤다. 하지만 상위 완전 노출은 아닌, 가슴 위로의 상체, 즉 어깨가 노출된 상태의 표현이다) 지휘자가 나온다. 짧은 머리의 여자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고는 맥콰리 대학 커뮤니티 합창단에 대해 짧게 소개하고, 지금부터 부를 노래에 관해 설명한다. 호주인의 호주다운 호주노래에 대해서. 그리곤 지휘가 시작되었다.
합창단의 준비된, 연습된 선율의 노래를 듣는데 까닭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근 심각하게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서 일부러 슬픈 영화나 슬픈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읽고 해도 전혀 눈물이 생성되지 않았었다. 심각하게 안구건조증을 의심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슬픈 음악도 아닌, 지휘자 손짓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호주 어르신이 내게 눈물을 만들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 위 사람들의 긴장된 숨소리와 호흡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말이다. 합창단 맨 앞줄, 그것도 중앙에 서 있는 그분은 자신의 파트를 기다릴 때까지는 수없이 손을 떨고 있었다. 손뿐만 아니라 턱과 입도 심하게 움직였다. 저러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증상의 합창단원이었다. 심하게 손과 입과 턱을 떨다가도 자신이 노래를 부를 파트가 되면, 주위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오직 지휘자와 합창단원들과의 소통과 조화만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삶이니 예술이니 모든 것이 녹아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마지막 대미의 장식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었다. 베토벤은 초연 당시 완벽한 청각장애였다고 한다. 청력을 다 잃어서 지휘 연주를 할 때도 합창단 가수들의 입술 모양으로 실황을 눈치챘다고 한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은 평생에 자주 접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니다. 게다가 작품의 성격상 보통 연말에나 연주된다고 하는데, 느리다가 빨라지는 템포나 독창과 합창을 교향곡에 넣었다는 거나 베토벤이 직접 가사를 넣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넣기도 해서, 너무나 지치고 치열했던 인생을 스스로 위로하고자 만들었다는 해석을 읽을 적 있다.
그 해석의 의미처럼 이 합창 교향곡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 것만은 확실하다. 몸이 성치 않아도 멋있게 꾸며 입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음에 행복해하는 호주 할아버지, 집에는 아픈 어머니가 따뜻한 수프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까만 얼굴의 아가씨, 볼록 나온 배가 신경 쓰이는지 자주 손을 배위로 올리는 어떤 동양인 등등 저마다의 상처, 고민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몸이 약한 사람들,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인 관객들을 위해서, ‘코지 심포니 오케스트라’(Kozy symphony Orchestra) 뒤로 2시간 내내 공연했던 한국 교민 합창단, 교민 솔리스트, 한국에서 온 솔리스트들, 그리고 호주 현지 합창단이 모두 나와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환희의 찬가’로 모든 이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의 음향을 집어삼켰다.
오 친구들아, 이런 곡조들은 아니야!
좀 더 안락한 악곡들 연주하자꾸나 좀 더 기쁨에 찬 곡조들 말일세.
환희! 환희를! 환희여, 신들의 찬란한 아름다움이여
낙원의 여인들이여! 우리는 빛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간다
성스러운 신전으로!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하도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 그대의 고요한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합창)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된 우정의 얻은 자여,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다 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그렇다. 비록 하나의 마음이라도
땅위에 그를 가진 이는 모두 다 그러나 그 조차 가지지 못한 자
눈물 흘리며 조용히 떠나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제4악장 가사 중)
다시 한 번 베토벤에게 감사하다. 치열했던 인생에 한 줄기 희망을 선사해줘서, 그리고 후대에서나마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된 교향곡을 만들어줘서가 아닌, 초연 연주 이후로 계속해서 실패를 겪어도 포기하지 않고 공연을 올리고 또 올려줘서 감사하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