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살아온 날 중 가장 늙은 나일까, 젊은 나일까?
“……”
“네 안녕하세요? 말씀하세요~~”
“……”
수화기를 통해 계속 들리는 것은 숨소리뿐이다. 처음 ‘여보세요?? 거기가 이유 극단인가요?’라고 말한 후로는 숨소리와 약간의 한숨 소리가 섞여 들린다. 저녁에 이런 전화를 받았으면 십중팔구 공포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대낮인지라 잠시 기다려준다.
“네 이유 극단인데…혹시 연극에 관한 문의이신가요?”
“네! 그게 아니라. 나이가 많은데도 할 수 있을까 해서.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연극을? 연기를?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제는 아이들도 다 크고 하고 싶은 게 뭔가 찾고 있는데 어릴 때 하고 싶었던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서 연기란 것을 하고 싶은데…”
단숨에 숨도 쉬지 않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뿜어냈다. 거침없이 다 얘기를 하고도 성에 안 차는지 자꾸 또 여러 번 물어본다.
“할 수 있을까?, 나이가 이렇게 많으데도?”라며.
한 해의 시작과 함께 세웠던 목적과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꼭 이맘 때 쯤이면 생각하게 된다. 분위기가, 숫자가, 왠지 6월은 중간에 있어서 뭔가 앞뒤로 다 재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월부터 지금까지 뭘 했지? 뭘 하기로 했는데 뭘 이뤘지? 하게 되고, 그럼 6월부터 12월까지 뭘 할 거지? 뭘 해야 하는지를 계획하게 된다. 다이어트를 하고 돈을 모으려 했던 계획들은 뒤집히기도 한다. 돈이 다이어트를 하고 다이어트가 살을 모아 들여서 탈이긴 해도 늘 계획이란 걸 세운다. 계획하고 안 지키는 게 왠지 일상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계획이란 건 ‘세워 놓지 않으면 불안한 정세를 만든다’. 어찌 되었든 인생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 목적과 목표가 자신의 행복과 직결하는 것이면 더 좋겠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자신을 위한 행복이라면 더욱 좋을 일이고. 그런데 그 하고 싶었던 일이 나이 때문에 못하다고 생각하고, 못 할 거라 짐짓 처음부터 겁을 먹게 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5년도 훨씬 전 일이다. 이유 극단으로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 중 본인이 나이가 가장 많을 거라고 장담했던 이가 있었다. 전화로 1시간 넘게 인터뷰했고, 오디션을 보면서도 오디션 장을 인생극장으로 만들었던 사람, 그분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다름 아닌 ‘나이’였다.
젊었을 때는 먹고 사느라 목표나 가치를 생각 못했고, 지금은 먹고살 만한데 젊었을 때의 얼굴과 몸이 아니라서 두렵기까지 하다고 했다. 하지만 연기 연습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가 안 생기고, 인간관계도 드라마라 생각하고 연기하듯이 사람을 대하니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어릴 적 꿈을 이루어서 좋아했던, 소녀 같은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종종 나이가 많아서, 나이 때문에,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도 연기 할 수 있냐는 질문을 전화로 받는다. 하지만 마음먹고 선뜻 나서 극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은 없다.
이래도 한 방 저래도 한 방인데, 인생에서 하고 싶었던 일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시작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연극이나 무대가 아니어도 좋다. 그게 예술이나 문화가 아니어도 목적이 있었거나 목표가 있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시작하시라 권하고 싶다. 왜냐면 오늘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돌아봤을 때 가장 나이가 많을지 몰라도,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어린 나이기 때문에, 지금 시작해도 된다. 내일도 아니고 다음 주도 아닌, 바로 오늘 말이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