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세계는 현실 그대로이다. 아침에 눈 뜨면, 다들 오늘 하루 먹고 살기에 바쁘고, 아프면 고통받고 있으며 각자 인생의 짐들을 짊어진 채 산다. 이렇게 아무 일 없는 세상에서도, 내 인생 하나 건사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주위 사람 생각하고 더 나아가 민중과 국가를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민중과 국가를 위해 애쓰고, 목숨마저 기꺼이 바친 영웅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런 영웅들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이 버틸 수 있었으며 광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대한민국이,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은 그냥 묵과하기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최근 뉴스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를 접했다. 그러면서 떠오른 인물 하나가 있다.
체 게바라.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이 두 사람은 1950년대 60년대 쿠바 혁명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둘의 행보는 확연하게 달랐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이상을 향해 멈추지 않고 돌진하다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1967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목슴을 잃었으며,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를 50년 가까이 통치하다가 2000년 넘어서 은퇴한 후, 얼마 전 90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공산주의 인물로, 각각 휴머니즘과 이상주의적 혁명가로, 또 한 명은 현실주의적 혁명가로 대표된다.
가자
새벽을 여는 뜨거운 가슴의 선지자들이여
감춰지고 버려진 오솔길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인민을 해방시키러
토지개혁, 정의, 방, 자유를 외치는
그대의 목소리 사방에 울려 퍼질 때
그대 곁에서 하나 된 목소리로
우리 그곳에 있으리.
압제에 항거하는 의로운 임무가 끝날 때까지
그대 곁에서 최후의
싸움을 기다리며
우리 그곳에 있으리
체 게바라가 죽기 하루 전까지 썼던 일기 내용 중 일부다. 체 게바라는 공산주의자로서 공산주의 국가를 두루 돌면서 외교를 했으며, 심지어는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독대하기도 했다. 체 게바라가 아직도 살아있어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 뭐라 할까 잠깐 상상이 그려지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죽은 지 30년 만에 체 게바라에 대한 새로운 조명작업이 활발해져, 특히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들고일어나기도 했었다. 그 힘으로 지금은 체의 이름을 딴 시계, 맥주까지 등장하고 베레모를 쓴 공허한 눈의 체 게바라 사진이 도배될 정도로 놀라운 자본주의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산주위자로서 게릴라 작전의 영웅이었던 체 게바라가 자본주의에 맞물려지는 아이러니한 이념의 상실 시대라고 해야 하나.
이념은 달랐지만 그를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체 게바라는 자신이 맡은 많은 임무를 그 이상으로 완벽하게 해낸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했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생각, 즉 인민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생각을 스스로 실현시켜 나갔다.
하루 일하고 하루 먹고사는 우리도, 우리의 생각 즉 민주주의를 향한 자유를 스스로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꾸고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실현 하면 된다.
체 게베라가 마지막까지 버틸 때 그의 옆에는 불과 열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오 천만 명이 있지 않은가. 물론 신념과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은 제외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품고 ‘그것을 지켜내야겠다’는 의지로 따진다면 숫자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