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필드에서 채스우드로 가는 길의 삽화
“나의 할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다. 삶이란 놀라울 정도로 짧단다.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밀려드는 사실은, 어떤 불행한 우연은 완전히 도외시한다고 해도, 어떻게 한 청년이 가장 가까운 마을로, 행복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삶의 시간조차도 그렇게 말 타고 가기에는 이미 한참이나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두려워함 없이, 말을 타고 나설 결정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옆 마을> 전문-
카프카의 문장은 압축적이고 게다가 이상하고 뜻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뜻이 금방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풀어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위 전문의 주제는 물론 ‘삶이란 놀라울 정도로 짧다’는 데 있다.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삶이란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로 말을 타고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일에서도 ‘어떤 불행한 우연’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불행한 우연이 없다 하더라도 ‘행복하게 흘러가는 평범함 삶의 시간이란 그렇게 말을 타고 가기에는 이미 한참이나 충분치 않다.’ 그러니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한 청년이 말을 타고 갈 때조차, 우리 삶의 평범한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여러 기억 중 하나가 떠오른다. 한국에 있을 때 철학을 공부하는 선배와 밤새 술을 마시면서 인생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이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가고 싶은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할 때였다. 선배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대선배였는데도 불구하고 철학엔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나를 붙들고 말하다가, 새벽녘에 헤어지면서 가로등 불이 꺼질 때쯤 한마디 하면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새벽안개와 함께.
“인생은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다. 이렇게 짧아. 내 키처럼.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 발끝까지 걸어가기도 뛰어가기도 엄청 힘들다. 그리고 두렵고. 잘 들어. 인생은 딱 바로 너 키만큼이야.”
호주에서 공부를 다 마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한국으로 가는 이도 있고, 한국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다시 호주로 오고자 하는 이도 있다. 공교롭게도 두 경우의 사람들과 인생을 논했다. 뭔가 멋있는 말로 나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지만,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 않아서 그냥 농담조로 말했다.
“한국에서 지금 말 때문에 난리지? 어디를 가든 말 타고 갈 생각 말아. 그냥 걸어 다녀. 그리고…”
압축적이고 비의적인 카프카 흉내 좀 내봤다.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밀려드는 사실은, 있었던 불행한 일들을 다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안다. 행복함만을 느끼면서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때 다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면서 최선과 끈기를 보여주기에도 짧은 인생이니, 오늘도 연습하러 연습장소로 향하라고.
스트라스필드에서부터 채스우드까지.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