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의 주관성 드러내… 스스로를 설명하는 용어, 사람들의 보는 방식에 영향
다른 이들이 당신을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시점에서, 사람들은 문득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루하다고, 측은하게 여긴다고 생각되면, 은근히 걱정이 되거나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 만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미국 ‘SAGE Publications f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서 발행) 최근호에 게재된 ‘지루한 사람들: 고정관념 특성, 대인관계 및 사회적 반응’(Boring people: Stereotype characteristics, interpersonal attributions and social reactions)이라는 제목의 연구는 미국 및 영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수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 주제를 다룬 것이다.
호주 과학미디어센터(Australian Science Media Centre)의 생물의학 연구원 올리비아 헨리(Olivia Henry)씨는 ABC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 ‘ABC RN Drive’에서 “자신이 인정하든 아니든,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을 흥미로워하고 좋아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 저널에 게재된 연구 결과는,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지루한 직업들
이번 연구에서 연구원들은 가장 지루한 취미, 직업, 성격 및 살기 좋은 장소를 평가했다. 헨리씨는 “보다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직업으로 데이터분석가, 회계사, 조세분야 종사자들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장 지루하지 않은 직업으로는 과학자, 연구원, 미디어 관련 직업이 꼽혔으며 또한 “가장 지루한 취미는 잠자기, 종교 활동, TV 시청, 동물 관찰, 수학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언급된, 가장 지루하지 않은 취미를 즐기는 이들은 ‘어떤 것에든 특별한 관심이 없는 기인이나 괴짜, 과학이나 음악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번 연구 보고서의 저자 중 하나인 사회심리학자 위난드 반 틸버그(Wijnand Van Tilburg) 박사는 “이 같은 발견 중 일부에 놀랍다”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발견이 고정관념의 주관성을 실제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과학자 대 데이터분석가, 수학 대 괴짜 등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용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런 고정관념을 경험한 이는 브리즈번에 기반을 둔 데이터과학자 다니엘 케네디(Daniel Kennedy)씨이다. 그는 한때 유전학 분야에서 일을 했고, 질병의 다양한 유전적 요인을 알아내고자 박사과정을 공부했으며 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최적화된 대중을 찾아내는 자선기금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와 대비해 보면, 그의 직업 타이틀은 좋지 않은 평점(지루한 쪽으로 치우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취미들 중 일부는 이 연구에서 밝혀진, ‘가장 지루하지 않은’ 것에 속한다. 그는 음악에 관심이 많고 피아노 연주를 하며 최근에는 하모니카 배우기를 시작했다.
다만 케네디씨는 파티나 행사 등에서 사람들이 직업에 대해 물으면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때로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조금 더 깊이 파고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데이터과학자는 통계학자보다 조금 더 흥미롭거나… 또는 나 자신을 통칭하는 다른 용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자주 경험한 일이지만) 그런 뒤에는 종종,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런 다음 사람들은 (제 약혼녀에게 눈을 돌려) ‘안나,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라고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디씨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자신이 회계사라고 하면 관심을 가질 만한 다음 질문을 생각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래서 나는 확실히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데이터 과학자라고 말할 때,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본 사람과의 사이에 형성되는 정신적 장벽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루한 사람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보고서의 다른 발견 사항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반 틸버그 박사는 전형적으로 ‘지루한 사람’들과 사교 모임을 갖는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여겨지는 것은 놀랍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에 무능한 것으로 보여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 틸버그 박사는 “특정 사람들의 집단이 개인적 따스함과 능력 둘 다 낮다고 정형화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를 들어, 우리는 회계사가 주변으로부터 ‘지루하지만 자신의 일은 잘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발견하는 대신 놀랍게도 이 직종 그룹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재능도 덜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이 연구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론 이는 다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덧붙였다.
때때로 고정관념은 과거 경험에 근거하기도 한다. 호주신경과학연구원(Neuroscience Research Australia)의 박사 후 연구원인 닉키-앤 윌슨(Nikki-Anne Wilson) 박사는 “인간의 뇌는 다름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해 추론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최소한 뇌에 관한 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정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밥(Bob)과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사라(Sarah)와의 점심시간은 늘 지루한 경향이 있다면, 이것은 이런 관계에 대한 우리의 미래 기대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과거 경험은 사회적, 문화적 규범과 결합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는 윌슨 박사는 “우리의 두뇌는 정보 조각을 연결하는 것을 좋아하며 이 기존 지식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필터링한다”고 말했다.
윌슨 박사는 이런 점으로 인해 “만약 사라가 회계사이고 우리가 이전에 ‘회계사는 지루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문화적 규범에 노출된 적이 있다면, 우리는 가여운 사라를 ‘지루하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반 틸버그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는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만큼 인식이 변할 수 있는지도 밝혀냈다”고 말했다. 그 한 예로 흡연이 전형적인 ‘지루한 일’로 여겨진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그는 “내가 성장했을 때에도 흡연은 여전히 멋진 것으로 여겨졌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미지는 바뀌었지만 흡연이 ‘전형적으로 지루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는 주의 사항도 있다. 이 연구를 위해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미국과 영국 국민들로 한정됐다. 틸버그 박사는 더 다양한 참가자를 포함하도록 조사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루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은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연구 보고서가 언급한
지루하거나 덜 지루한 직업
(위에서부터 가장 지루한 직업)
-데이터분석가
-회계사
-조세/보험업무
-청소부
-은행/금융업무
-데스크 안내직
-사무직
-점원
-수학자
-보안부문
-비서직
-종교
-도서관 사서
-수작업 노동자
-우편/물품 배달
-운전
-판매
-컴퓨터/정보통신
-관리직
-정치
-법률
-작가
-엔지니어
-교사
-보건전문가
-기자
-과학자
-공연/예술부문
(아래쪽에서부터 덜 지루한 직업)
Source: van Tilburg, Igou, Panjwani(Boring People: Stereotype Characteristics, Interpersonal Attributions, and Social Reactions)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