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인플레이션 상승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 반복되는 ‘상승 사이클’ 경계 필요하다”
식료품을 쇼핑하거나 정기적으로 자동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제 전문가의 우려는 더 이상 눈길을 끌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만큼 절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호주 통계청(ABS)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물가상승률은 그 체감 정도를 보여주는 물리적 수치이다. 이것이 소비자 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CPI)이다.
금융서비스 사인 ‘AMP Limited’의 다이아나 무시나(Diana Mousina) 경제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방법은 소비자가 돈을 지출하는 다양한 범주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BS의 통계원(number cruncher)들은 각 주 수도에서 3개월마다 수집되는 약 10만 건의 서로 다른 개별 가격으로 이 ‘상품 바구니’의 최신 가격을 확인한다. 그런 후 통계학자는 3개월 전 마지막 조사 이후 가격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계산하게 된다.
ABS는 또한 매년 호주인들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비용을 어디에 지출하는지를 조사하고, 그에 따라 CPI를 ‘가중치’(weights)하여 호주 평균 가정의 가계재정 지출 부분을 반영한다.
무시나 연구원은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품, 주택(주거), 공과금, 교육 및 건강 등”이라면서 “하지만 CPI에는 우리가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모든 항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가령 지출 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는 토지 비용이나 모기지 상환은 고려하지 않는다. 무시나 연구원은 “ABS가 주택가격을 견인하는 가장 큰 요소인 토지 비용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집값을 자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며 “소비자 물가 데이터는 자산이 아닌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지출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호주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올 들어 첫 3개월 동안 계산된 마지막 인플레이션 수치는 2.1%였다. 이로써 올해 3월까지, 지난 1년 동안 ‘상품 바구니’의 가격은 5.1% 상승했다.
그리고 지난 7월 27일(수), ABS는 6월 분기에만 CPI가 1.8% 높아졌다고 밝혔다. 3월 분기 2.1%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치이지만, 이로써 연간 인플레이션 수치는 6.1%가 됐다.
하지만 연간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 비해 훨씬 낮은 분기별 가격 상승이 데이터에 계속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호주중앙은행(RBA)과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물가상승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올해 말까지 CPI 수치는 7%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국가에서의 물가상승은 호주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미국의 경우 9.1%, 영국 8.2%로 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호주의 이웃인 뉴질랜드도 7.3%로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과거의 사례를 보면, 물가상승 속도가 지금보다 더 가파르게 이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1970년대, 호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급증한 바 있다. 석유공급 충격으로 연료 가격이 급등했으며, 이의 여파가 경제 전반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 20년 전, 호주는 기록상 가장 큰 물가상승을 경험했었다. 1951년 12월, 호주 물가는 무려 23.9%가 상승했다.
이 역시 세계적 사건에 의한 것으로, 당시 한국전쟁으로 양모 붐이 촉발되었고, 하룻밤 사이에 양모가격이 거의 세 배로 높아졌다. 세계 최대 양모 생산국인 호주는 국민소득과 지출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당시 연방정부는 국민들의 주택소유 비율을 높이고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고자 많은 이들이 자기 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 한편 이 모든 수요가 창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상품들의 세계적 공급은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파괴와 혼란에서 회복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인플레이션 수치,
높은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기인한다. 공급은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이고 수요는 원하는 상품의 양이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조정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사용하고자 하는 양보다 더 많은 상품을 갖고자 한다면, 그 상품의 가격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공급될 만큼 올라갈 것이다.
만약 이 상품가격이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수요 충족을 위해 공급이 확장될 것이고, 또는 다시 균형이 잡힐 때까지 높은 가격으로 인해 수요가 감소할 수도 있다.
무시나 연구원은 “COVID 팬데믹과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수요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면서 “지난 2년 동안 특히 글로벌 여행이 제한된 시기에 상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여러 부분에서의 일상이 제한되었던 시기에) 소비자들은 더 많은 현금을 갖고 있다고 느꼈고, 실제로 은행 계좌에 여분의 현금이 쌓였으며, 이것이 상품에 대한 추가 수요를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COVID 팬데믹 사태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가장 최근에는 호주 동부 전역에 걸쳐 반복된 폭풍과 홍수 피해가 결합되어 많은 상품의 생산 및 유통이 제한됐다.
무시나 연구원은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문제를 겪었고 상품은 소비자 수요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빠른 물류가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일부 상품 공급망이 차단되기도 함으로써 기업은 이런 제품의 가격을 인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RBA의 대책은
상품 공급 문제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신 기준금리라는 레버를 활용하여 수요를 조정하고 경제를 가속화하거나 둔화시키려 한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대부분 경제 선진국가의 중앙은행은 그 레버를 거의 ‘0’에 맞추어 두었으며 유럽 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과 일본은행(Bank of Japan) 등 일부 국가 중앙은행은 그보다 아래의 기준금리를 설정해 두었었다.
하지만 한국은행(Bank of Korea)과 뉴질랜드 중앙은행(Reserve Bank of New Zealand)을 시작으로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수요가 살아있을 뿐 아니라 급증했고, 공급 제약으로 인해 상품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이로써 이자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의 느린 흐름은 올해 홍수로 바뀌었고, 가장 큰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은행(US Federal Reserve)은 3월에야 금리를 인상했다.
호주 중앙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 RBA)은 5월(0.25%포인트)에 그 뒤를 이었고 6월과 7월에는 더 큰 비율의 인상(각 0.5%포인트)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유럽 중앙은행조차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 대륙의 경기 침체를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0으로 되돌렸다.
이 같은 금리상승은 그러나, 아직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멈출 것으로 진단된다. 이달 첫 주 화요일(2일), RBA가 또 50베이시스포인트를 인상, 현재 호주 기준금리는 1.85%이다. 커먼웰스은행(CBA)는 올해 말까지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며 ANZ과 웨스트팩(Westpac)의 경제학자들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3.35%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또 다른 2%포인트의 추가 이자율 인상이 될 것이며, 이는 변동이자율 모기지(variable mortgage)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무시나 연구원은 중앙은행들이 1970년대 및 80년대처럼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인플레이션이 약간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이 이를 따라잡는데 더디다 보니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고 덧붙였다.
RBA의 필립 로우(Philip Lowe) 총재는 최근 연설에서 “물가와 임금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물가와 임금을 올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경고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더 높은 임금 요구에 기꺼이 동의하게 되고, 이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영구화하며, 그럼으로써 이것이 반복되는 자기강화 사이클(self-reinforcing cycle)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실제로 1970년대 일어났던 일이며, 그 끝은 좋지 않았다”고 말한 로우 총재는 “현재 이 같은 사이클에 대한 증거는 없으며 현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너무 빠른 기준금리 인상,
경기침체 초래할 수도
하지만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너무 강하게, 그리고 너무 빨리 수요에 직면하면 소비자 수요가 갑자기 감소할 수 있고 경제는 반년 혹은 그 이상 위축되는 불황을 겪을 위험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RBA는 ‘0’이 아닌, 2~3의 물가인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무시나 연구원은 “이는 소비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적정 수준의 물가인상이라 생각되었다”면서 “물가상승률이 2% 미만이면 디플레이션(deflation. 물가하락)에 빠질 수 있는 시간 또는 위험이 있으며, 물가하락은 소비자나 기업 지출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내일은 더 저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오늘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수요가 감소하고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호주 중앙은행은 물가가 더 빨리 오르기를 기다리는 데 10여년을 보냈고,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없애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무시나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면서 “만약 우리가 소비자 물가상승률에 조금 더 가까운 임금 인상을 얻는다면, 이는 지난 몇 년간 호주에서는 임금 인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호주의 가계부채 규모와 최근 정부 차입이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임금과 세금 인플레이션은 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RBA는 인플레이션을 목표치인 2~3%로 되돌리고자 이 균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운 입장에 있다.
이쯤 되면, 소비자들은 ‘골디락스’(goldilocks. 물가상승 부담 없이 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경제 상황)를 떠올릴 수도 있다. 기준금리가 너무 낮으면 안 되고, 너무 많이 지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물가가) 너무 높으면 우리는 충분히 지출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